[한가위 칼럼] 범사유인정(凡事留人情)이면 후래호상견(後來好相見)이라

권오정 문화부장/ 기자

등록 2026-09-24 08:12

범사유인정(凡事留人情)이면
후래호상견(後來好相見)이라

“모든 일에 인정(人情)을 남겨두면 훗날 다시 만났을 때 좋은 낯으로 서로 보게 된다”는 뜻이다.

『명심보감』 계성편(戒性篇)에 실려 전해지는 이 한마디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지켜야 할 삶의 지혜가 담겨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또 헤어진다.
직장에서 만나기도 하고, 학교에서 만나기도 하며, 길에서 우연히 인연을 맺기도 한다. 때로는 오랜 시간을 함께하고도 어느 순간 각자의 길을 가기도 한다.

그러나 만남에는 반드시 흔적이 남는다.

함께하는 동안 따뜻한 정을 나누고, 어려울 때 손을 내밀고, 상대의 허물을 조금 감싸주며, 작은 일에도 배려와 자비를 베풀었다면 그 인연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세월이 흐른 뒤 우연히 마주쳤을 때도 그렇다.
“그때 참 고마웠지.”
“잘 지냈는가.”
이렇게 웃으며 다시 마주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사람 사이에 남겨놓은 아름다운 정이 아니겠는가.

반대로 한때의 감정 때문에 모진 말을 하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놓아버린다면 훗날 다시 만났을 때 얼굴을 들기가 어려워진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인정을 남겨두라’고 했다.

인정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거창한 선행만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 상대를 이해하려는 마음, 한 번 더 참아주는 배려, 작은 허물을 덮어주는 너그러움이면 충분하다.

마침 추석이 다가온다.

올해도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찾고 부모형제를 만나게 될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서로 어떻게 살아왔는지 안부를 묻고, 집안 어른들이 세월 따라 늙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문득 ‘나는 누구인가, 나는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돌아보는 시간도 가져보면 좋겠다.
명절은 단순히 차례를 지내고 음식을 나누는 날만은 아니다.

바쁘게 살아온 사람들이 잠시 일손을 내려놓고 마주 앉아 정(情)을 나누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러니 가능하면 식탁 위에 굳이 올리지 않아도 될 이야기는 내려놓았으면 한다.
정치 이야기, 사회적 갈등, 경제 문제처럼 서로 생각이 다른 주제를 놓고 옳고 그름을 따지다 보면 모처럼 만난 가족 사이에 언성이 높아질 수도 있다.

좋은 날, 좋은 시간에 언행에. 세심한 주의가 요구되는 데 꿈에라도 얼굴 붉힐 일 하나라도 만들 필요가 없다.

이번 추석에는 누가 옳은지를 따지기보다
“요즘 어떻게 지내느냐”
“건강은 어떠냐”
“힘든 일은 없느냐”
하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 정담(情談)을 나누었으면 좋겠다.

부모의 손을 한 번 더 잡아드리고, 형제의 어깨를 두드려주고, 오랜만에 만난 친척에게 따뜻한 눈길 한 번 건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올해 만난 부모님의 모습이 내년에는 또 달라질 수 있고, 오늘 함께 웃은 형제자매와의 만남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도 알 수 없다.
그러니 만날 수 있을 때 만나고,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하고, 정을 나눌 수 있을 때 나누어야 한다.

凡事留人情 後來好相見.

모든 일에 인정을 남겨두면 훗날 다시 만나도 좋은 얼굴로 만날 수 있다.
이 가르침이 어찌 가족에게만 머물러야 하겠는가.
이웃과 이웃 사이에도, 직장 동료 사이에도, 친구와 친구 사이에도, 더 나아가 우리 사회 전체에도 필요한 삶의 지혜다.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미움보다는 정을 남긴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도 지금보다 훨씬 따뜻해질 것이다.

한 사람의 인정이 또 다른 사람의 인정으로 이어지고, 그 온기가 가정에서 이웃으로, 이웃에서 사회로 퍼져간다면 어떨까.

인정의 불씨가 들불처럼 번져가는 세상.

그런 세상을 꿈꾸어 보는 것도 이번 추석을 맞는 또 하나의 의미가 아닐까.
“凡事留人情 後來好相見.”

사람을 만날 때는 정을 남기고,
헤어질 때는 좋은 말을 남기자.

언젠가 다시 만났을 때
서로 환하게 웃을 수 있도록.

권오정 문화부장/

권오정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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