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 힘든 '노숙위기 청년'…가족 갈등·가정 해체에 거리 내몰려
73%가 한달 소득 100만원 이하…"가족안전망 없는 이들에 도움 필요"
고시원 [연합뉴스TV 제공]
(서울=연합뉴스) 이의진 기자 = 장희경(33·가명)씨에게 최근 두 달여는 하루하루 살아남기 위한 '사투'였다.
몸 누일 곳이 없었다. 지난 6월 부모 집을 뛰쳐나왔기 때문이다. 가정폭력 피해자인 장씨는 춥고 배고프더라도 가정 밖의 삶을 택했다.
일단 찜질방을 전전했다. 사용 시간이 12시간을 넘으면 부과되는 추가 요금이 무서워 온종일 머무르지는 못했다.
남은 12시간은 일용직으로 일하면서 구직에 썼다. 이를 제외하면 대부분은 도서관에서 보냈다. 돈을 내지 않고도 머물 수 있는 실내 공간은 그곳뿐이었다.
"내일 도서관이 문을 열지 않으면 어디로 가야 하나…" 노숙 직전까지 몰렸던 그는 두 달간 매일 이런 불안을 마음에 품고 살았다고 한다.
장씨는 보부상처럼 등짐을 이고 다녔다.
매일 찜질방을 나설 때 몸통만 한 보따리를 좁은 사물함에서 낑낑대며 빼내야 했다. 옷가지 몇 벌과 생필품뿐이었지만 그에겐 '전 재산'이다.
큰 짐을 메고 도서관을 찾으면 모두 자신을 쳐다보는 듯해 숨고 싶었다.
주거가 사라지니 숨만 쉬어도 지출이 생겼다. 일용직으로는 감당이 안 됐다.
물류 센터 등에서 일하느라 땀 범벅이 된 옷을 깨끗하게 하려면 코인세탁소에 매번 몇천원∼1만원씩 써야 했다.
일하는 동안 짐을 맡기는 공용 물품 보관함 사용에 또 1만원이 넘게 든다.
통신비 부담도 컸지만, 이 역시 '필수 지출'이었다. 휴대전화 없이는 일용직 기회도 잡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달 중순 통장 잔고에는 2만원이 찍혀있었다.
장씨와 같은 처지는 '주거 위기 청년' 혹은 '노숙 위기 청년'으로 표현된다. 마땅히 거주할 곳이 없어 PC방·사우나·카페 등을 전전하는 청춘들이다.
고립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래도 장씨는 거리로 내몰리는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 비영리단체 아름다운재단과 사단법인 희망가치의 '주거위기 청년 지원사업' 대상으로 선정되면서다.
이 사업은 수혜자에게 3개월간 고시원 등 임시 거처 월세를 지원한다.
지난 22일 영등포구의 청년주거지원센터에서 만난 장씨는 고시원에서 지내는 현실에 감사하다고 했다.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을 수 있는 공간에 기쁠 따름이다.
장씨는 "밖에서는 먹고 자고 씻을 때도 타인 시선에 노출된다"며 "노숙인이 피해야 할 대상으로 여겨지는 만큼 그렇게 안 보이려 더욱 곤두서야 했다"고 말했다.
이어 "주거가 불안정하면 존엄성과 개인위생이 무너지고, 심리가 위축된다"며 "시야가 좁아진다. 사회 복귀는 꿈도 못 꾸고, 나쁜 일만 생길 거라는 생각에 매몰된다"고 털어놨다.
코너에 몰린 장씨는 노숙인 쉼터 입소도 진지하게 고려했다.
하지만 시설 측에서 주 대상인 중·장년 노숙인과 마찰 가능성과 안전 우려를 언급하며 에둘러 거부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길어진 고립 생활로 타인과의 소통이 쉽지 않다고 밝힌 장씨는 힘겹게 답변을 이어갔다.
주거가 안정돼 심리적으로 회복된 스스로를 마주하는 시간을 갖고자 이번 인터뷰에 응했다고도 덧붙였다.
장씨는 "이전에는 미래를 생각할 수 없었다. 면접에 가려면 용모가 깔끔해야 하고 준비가 필요한데, 그런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며 "용기를 내 이 자리에 나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처럼 '가족 안전망'이 없어 거리로 내몰릴 청년들 존재가 사회적으로 인지되길 바란다고 했다.
아름다운재단이 송아영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연구팀에 의뢰해 재단 지원을 받는 만 18∼34세 노숙위기 청년 187명을 조사한 결과 73%가 한 달 소득이 100만원 이하로 나타났다.
영등포구 청년주거지원센터 내 청년들의 메모 [촬영 이의진]
응답자들의 주요 지출 항목은 식비(37.4%), 주거비(36.4%) 등이었다. 저축이나 교육·여가 등에 쓰는 비율은 1% 수준이었다.
연구팀은 상당수가 가족 갈등, 가정 해체, 경제적 어려움 속 반강제적으로 원가정을 떠나야 했던 경우라고 밝혔다. 이들이 실질적으로는 가족 보호를 받지 못하지만, 서류상 부모와 분리되지 않는다고 간주해 복지에서 배제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도 지적했다.
장씨도 가족과 아예 연락하지 않는다. 그는 명절이 싫다고 한다. 사실상 다른 나라 이야기에 가깝다. '본가에 가느냐'는 안부 인사를 들으면 가슴이 답답해진다고 한다.
장씨는 "다들 돌아갈 곳은 있다고 생각하고, 그런 가족관계가 정상이라고 한다"며 "부모가 있어도 연락하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다들 상상 못 할 일이라 숨기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센터에서 힘이 된 건 나 같은 처지가 또 있음을 알게 된 것"이라며 "찜질방에서 잘 때 '내가 비정상일까' 궁금했다. 비슷한 이들이 있다는 것만으로 의지가 된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