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계장터
신경림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청룡 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
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이 되라네.
뱃길이라 서울 사흘 목계 나루에
아흐레 나흘 찾아 박가분 파는
가을볕도 서러운 방물장수 되라네.
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 하고
강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산서리 맵차거든 풀 속에 얼굴 묻고
물여울 모질거든 바위 뒤에 붙으라네.
민물 새우 끓어 넘는 토방 툇마루
석삼년에 한 이레쯤 천치로 변해
짐 부리고 앉아 쉬는 떠돌이가 되라네.
하늘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고
산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시장에는 그곳 사람들이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고, 무엇을 사고팔며 살아가는지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태국 치앙마이 찡짜이마켓 입구.
치앙마이의 시장을 걷다가 문득 신경림의 「목계장터」가 떠올랐다.
충주의 목계나루와 태국 북부의 치앙마이. 두 장터 사이에는 수천 리의 거리가 놓여 있다. 목계장터에는 장돌뱅이와 방물장수가 있었고, 치앙마이의 시장에는 농부와 수공예가와 세계 여러 곳에서 온 여행자들이 있었다. 시대도 나라도 다르지만 장터에 모인 사람들의 표정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신경림은 「목계장터」에서 떠돌며 살아가는 사람의 삶을 노래한다. 바람처럼 떠돌다가 어느 장터에 짐을 부리고 앉아 잠시 쉬는 사람. 생각해보면 여행자도 그런 사람인지 모른다. 낯선 도시에 며칠 짐을 풀었다가 다시 떠나는 사람.
9월 5일 치앙마이에서 셋째 날 아침 찡짜이마켓으로 향했다. 낯선 곳으로 여행을 가면 나는 이름난 관광지 못지않게 시장을 좋아한다. 시장에는 그곳 사람들이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고, 무엇을 사고팔며 살아가는지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잘 꾸며진 관광지는 도시가 보여주고 싶은 얼굴이라면 시장은 도시가 감추지 못하는 맨얼굴에 가깝다.
징짜이마켓은 채소와 과일, 빵과 커피, 젊은 공예가들이 만든 옷과 가방, 도자기와 목공품, 장신구들과 문화공간이 한데 어우러진 치앙마이의 주말시장이다. 징짜이마켓(Jing Jai Market)은 농산물시장과 수공예시장, 문화공간이 한데 어우러진 치앙마이의 주말시장이다. 흔히 동남아 시장 하면 떠올리는 왁자한 야시장과는 사뭇 다르다. 아침에 찾아가 천천히 먹고 걷고 구경하는 시장이다.
‘징짜이’는 태국어로 ‘진심 어린’, ‘성심을 다하는’이라는 뜻을 지녔다고 한다. 우리말로 감각적으로 옮기면 ‘진심시장’쯤 될까.
큰 나무 아래 흰 천막들이 늘어서 있었다. 치앙마이 인근 농부들이 가져온 채소와 과일, 빵과 커피가 놓이고 그 옆에는 젊은 공예가들이 만든 옷과 가방, 도자기와 목공품, 장신구들이 자리를 잡았다. 곳곳에서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물건을 파는 장터이면서 사람들이 자신이 만든 것을 들고 나와 서로의 하루를 나누는 예술시장 같았다.
나는 그곳에서 마음에 드는 모자를 득템했다. 여행에서 산 물건에는 가격표와는 다른 값이 붙는다. 한국에 돌아와 그 모자를 다시 쓰는 어느 날, 치앙마이의 큰 나무와 흰 천막들이 함께 따라 나올지도 모른다.
징짜이마켓을 나와 찾아간 코코넛마켓은 분위기가 또 달랐다. 입구에 들어서자 높다란 코코넛 야자나무들이 먼저 우리를 맞았다. 하늘로 곧게 솟은 나무 아래 작은 좌판들이 들어서 있고 그 사이로 물길과 대나무 다리가 이어졌다. 시장이라기보다 야자나무 숲 아래 하루 동안 펼쳐놓은 시골 소풍 같았다.
예쁜 난꽃으로 장식된 신선한 초록색 코코넛 음료
사람들은 음식을 사 들고 야자나무 그늘에 앉아 있고, 바람이 불 때마다 기다란 야자 잎들이 서로 몸을 비볐다. 그 사이로 열대의 햇빛이 잘게 부서져 내렸다.
한국에서 가져온 일상의 속도가 그 그늘 아래서는 조금 느려졌다. 여행 도중에는 일정 사이사이 카페에도 들렀다. 치앙마이에는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카페가 유난히 많았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앞에 놓고 에어컨 바람을 쐬며 쉬었다. 다음 관광지로 가기 위해 잠시 충전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또한 여행이었다.
얼음과 함께 갈아낸 망고를 한 모금 들이켜면 열대의 더위가 잠시 뒤로 물러난다. 여행을 돌아보면 이름난 음식보다 길모퉁이에서 마셨던 그런 한 잔이 더 또렷하게 기억날 때가 있다.
망고 스무디 잔을 맞대며 여행의 달콤한 순간을 건배하다. 치앙마이의 뜨거운 햇살도, 함께 걸었던 시간도 잔 속에서 노랗게 출렁였다.
돌아보면 여행도 시장과 닮았다. 필요한 것만 골라 담는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오래 가지고 돌아오는 것은 돈을 주고 산 물건이 아니다. 징짜이마켓의 나무 그늘과 코코넛마켓의 야자 잎 사이로 떨어지던 햇빛, 알아듣지 못하면서도 웃으며 주고받았던 몇 마디 말 같은 것들. 그런 것은 가방에 넣지 않았는데도 이상하게 집까지 따라온다.
점심은 ‘넹 무옵옹’에서 먹었다.
‘무’는 돼지고기, ‘옵’은 굽거나 열을 가해 익힌다는 뜻이고, ‘옹’은 큰 항아리를 가리킨다. 말 그대로 항아리에서 구워낸 돼지고기다. ‘넹’은 이 집 주인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요리법은 커다란 토기 항아리 안쪽에 양념한 돼지고기를 걸어 놓고 숯불의 열기로 천천히 익히기 때문에 겉은 노릇하고 바삭하면서 속은 촉촉한 것이 특징이다. 항아리가 일종의 화덕 역할을 하는 셈이다. 닭을 같은 방식으로 구운 ‘까이 옵 옹’도 함께 먹었다.
넹 무옵옹의 요리법은 커다란 토기 항아리 안쪽에 양념한 돼지고기를 걸어 놓고 숯불의 열기로 천천히 익히기 때문에 겉은 노릇하고 바삭하면서 속은 촉촉한 것이 특징이다.
여행은 눈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혀로도 하고 코로도 하고 때로는 손끝으로도 한다. 그래서 한 도시의 기억에는 풍경만 남는 것이 아니라 냄새와 맛도 함께 남는다.
잠시 숙소에서 쉬었다가 저녁 무렵 다시 밖으로 나왔다. 아침과는 전혀 다른 장터가 기다리고 있었다. 숙소 가까운 우아라이 거리가 통째로 시장으로 변해 있었다. 자동차가 다니던 길을 막고 양쪽으로 좌판이 길게 들어섰다. 토요일 저녁에만 열리는 우아라이 토요마켓이었다.
우아라이는 오래전부터 은세공 장인들이 모여 살던 동네다. 은반지와 목걸이, 금속공예품뿐 아니라 손으로 짠 천과 가방, 목공예품과 도자기들이 불빛 아래 펼쳐져 있었다. 시장 한쪽의 ‘실버 템플’ 왓 스리수판은 이 동네가 오랫동안 품어온 은세공의 시간을 말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해가 기울수록 거리는 사람으로 가득 찼다. 시장은 사람을 오래 걷게 한다. 살 물건이 없어도 걷고 배가 부른데도 먹을 것을 들여다본다. 꼬치가 익어가는 냄새, 북부식 소시지 사이우아의 향, 과일주스를 가는 소리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이 뒤섞였다. 냄새 하나를 따라가다 골목을 만나고 골목을 빠져나오면 또 다른 좌판이 나타났다.
그 순간 목계장터의 장돌뱅이와 치앙마이 시장을 걷고 있는 내가 겹쳐졌다.
사람은 어쩌면 오래전부터 그렇게 살아왔을 것이다. 물건을 짊어지고 길을 나서고, 장터에서 사람을 만나고, 먹고 마시고, 잠시 쉬었다가 다시 길을 떠나는 것이다.
타패 게이트. 치앙마이가 1296년 란나 왕국의 수도로 세워질 당시 도시는 성벽과 해자로 둘러싸여 있었다.
저녁을 먹은 뒤 타패 게이트(Tha Phae Gate)로 향했다. 치앙마이가 1296년 란나 왕국의 수도로 세워질 당시 도시는 성벽과 해자로 둘러싸여 있었다. 타패 게이트는 그 성곽의 동쪽 출입구다. 지금의 붉은 벽돌 성문과 성벽에는 복원된 부분이 많지만 여전히 올드시티를 상징하는 장소다.
‘타’는 나루나 선착장, ‘패’는 뗏목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옛날 이 문을 나서 동쪽으로 가면 핑강의 나루와 시장으로 이어졌다. 나는 그 말이 마음에 들었다.
나루와 장터.
신경림의 목계에도 나루와 장터가 있고 치앙마이의 타패에도 나루와 시장의 기억이 남아 있었다. 남한강과 핑강 사이 수천 리의 거리가 그 순간 조금 가까워지는 듯했다.
옛날에는 사람과 말과 수레가 이 문을 드나들었을 것이다. 지금은 세계 곳곳에서 온 여행자들이 성문 앞에 모여 사진을 찍는다. 광장에 내려앉았던 비둘기들이 인기척에 놀라 한꺼번에 날아올랐다.
타패 게이트에서 다시 걸어 떵바(Tong Bar)로 향했다. 낮 동안 사원과 시장을 걷던 관광객들이 밤이면 음악과 술이 있는 곳으로 옮겨간다. 떵바는 올드시티에 있는 라이브 음악 바다. 현지인과 여행객들이 한데 어울려 밴드의 연주를 들으며 맥주를 마신다.
치앙마이에서 마지막 밤을 떵바에서 밴드의 노래와 연주를 들으며 태국 맥주 창 클래식을 마셨다.
창 클래식 한 병을 앞에 놓았다. 무대에서는 알아듣지 못하는 태국 노래가 흘러나왔다. 사람들은 잔을 들고 웃고 떠들었다. 말은 알아듣지 못했지만 음악에는 통역이 필요 없었다.
치앙마이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었다.
아침에는 징짜이마켓의 큰 나무 아래를 걸었고, 코코넛 야자나무 그늘에 앉았다. 점심에는 항아리에서 구운 고기를 먹었으며 저녁에는 우아라이의 수많은 좌판 사이를 헤매었다. 오래된 타패의 성문을 지나 마지막에는 낯선 노래를 들으며 맥주잔을 들고 있었다.
하루 종일 사고, 먹고, 걷고, 쉬고, 다시 걸었다.
돌아보면 여행도 시장과 닮았다. 필요한 것만 골라 담는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오래 가지고 돌아오는 것은 돈을 주고 산 물건이 아니다. 징짜이마켓의 나무 그늘, 코코넛 야자 잎 사이로 떨어지던 햇빛, 항아리 뚜껑을 열 때 올라오던 김, 우아라이의 불빛, 타패 게이트를 날아오르던 비둘기, 떵바에서 손에 쥐었던 차가운 맥주병. 그런 것들은 가방에 넣은 적이 없는데도 이상하게 집까지 따라온다.
신경림의 「목계장터」에는 장터를 떠돌다가 어느 곳에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어가는 사람이 있다. 여행자인 나도 다르지 않았다. 치앙마이에 며칠 짐을 부리고 앉아 있었을 뿐이다.
떵바를 나서 숙소로 돌아왔다. 내일이면 다시 짐을 싸고 이 도시를 떠나야 한다.
낯선 곳을 보기 위해 떠난 여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돌아갈 때가 되어서야 알았다. 며칠 동안 내가 본 것은 치앙마이만이 아니었다. 시장 한쪽을 기웃거리고, 낯선 음식을 먹고, 야자나무 아래 앉아 쉬고, 이름 모르는 노래 앞에서 맥주잔을 들고 있던 또 하나의 나였다.
목계의 떠돌이가 짐을 거두어 다시 길을 나서듯, 나도 이제 치앙마이에서 부렸던 짐을 다시 꾸려야 했다.
그날 밤 치앙마이는 내가 떠나기도 전에 조금씩 추억이 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