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스께끼
박영녀
비비빅을 먹는다
베어 물자 툭 떨어져 버린 그 여름
할머니 아이스께끼
여름방학 때 놀러 간 외갓집
햇빛에 발개진 샐비어
쫓아다니며 부채질해대는 할머니
보이지 않는다
해바라기 고개 숙일 때
고샅을 돌아오는
할머니의 잰걸음이 불룩하다
신작로 점방에 갔다 온다며
패인 주름이 웃는다
쌀겨 같은 흙먼지 일으키며
바삐 걸었을 뿌연 고무신
무명앞치마 속에서
검은 팥물 뚝뚝 흐르던
한 입 베어 물자
반은 땅으로 떨어져 버린
그리움
아이스께끼라는 말만 들어도 한 시절이 따라온다.냉동고를 열면 언제든 아이스크림을 꺼내 먹을 수 있는 지금과 달리, 아이스께끼는 기다려야 먹을 수 있는 것이었다. 여름 한낮 골목 저쪽에서 아이스께끼 장수의 목소리가 들려오면 아이들은 하던 놀이를 멈추었다. 돈이 있는 아이는 집으로 뛰어갔고, 돈이 없는 아이는 수레가 골목을 빠져나갈 때까지 오래 바라보았다.
박영녀의 「아이스께끼」에는 그 시절의 여름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그러나 이 시에서 아이스께끼보다 먼저 읽어야 할 것은 ‘할머니’이고, 아이스께끼보다 오래 남는 것은 ‘외갓집’이다.
시인은 지금 비비빅 하나를 베어 문다. 그런데 아이스크림 한 조각이 툭 떨어지는 순간 시간도 함께 떨어진다. 현재에서 떨어져 나간 한 조각의 시간이 시인을 오래전 여름방학의 외갓집으로 데려간다.
그곳에는 샐비어가 붉게 피어 있고 해바라기가 고개를 숙이고 있다. 그리고 손주에게 부채질을 해주던 할머니가 있다. 어느 순간 할머니가 보이지 않는다. 손주에게 아이스께끼 하나 사주려고 신작로 점방까지 간 것이다.
이 시에서 ‘고샅’과 ‘신작로’라는 두 단어에 눈길이 오래 머문다.
고샅은 집과 집 사이를 잇는 좁은 마을길이고 신작로는 마을 바깥으로 뻗어나간 큰길이다. 할머니는 고샅을 빠져나가 신작로를 걷고 다시 고샅을 돌아온다. 그 짧은 길 위에 한 사람의 사랑이 있다.

“쌀겨 같은 흙먼지”를 일으키며 걸어왔을 뿌연 고무신과 무명앞치마는 그 시절 할머니들의 초상과도 같다. 냉장 시설도 변변찮았던 여름날, 아이스께끼는 점방에서 집까지 오는 동안 벌써 녹기 시작했을 것이다. 할머니는 그것이 녹기 전에 손주에게 먹이고 싶어 걸음을 재촉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시의 아이스께끼는 차가운 음식이면서 가장 따뜻한 기억이다. 어쩌면 그리움이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다시 주워 먹을 수 없는 것.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지만 이미 흙 위에서 녹아버린 것. 우리는 남은 반쪽을 먹으며 떨어뜨린 반쪽을 평생 생각한다.
한여름 뙤약볕 아래 맨발로 뛰어다니던 골목, 아이스께끼 장수의 목소리가 들리던 신작로, 몇 푼을 손에 쥐고 달려가던 점방. 이제 그 길은 넓어졌거나 사라졌고 점방 자리에는 다른 건물이 들어섰을 것이다. 그러나 사라진 장소가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장소는 지도에서 없어지고 난 뒤에야 마음속에 생겨난다.

60년대나 70년대까지 쓰이던 아이스케키 나무통이다.
이런 아이스케키 나무통에 하드와 아이스케키를 넣어다니면서 판매원들이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면서 팔았다. 위에서 뚜껑을 열면 되는 구조다.
국민학교의 여름 하굣길은 언제나 아이스께끼를 빨면서 친구들과 손잡고 다니던 기억이 함께 한다. 그 여름날에 즐겨먹던 얼음과자 ‘아이스케키’ 또는 ‘아이스께끼’는 옛날 1960년대 후반 국내에서 팔던 빙과류(Ice pop)를 가리키던 말이다.
아이스 케이크(Ice cake)의 일본식 발음(アイスケーキ)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확히 말하면 오키나와에서 쓰는 방언인 우치나 야마토구치이다.
‘아이스케키’는 아이오와주의 약국 주인이 사탕과 아이스크림이 뒤섞인 것을 보고 착안했다고 한다. 거기에 막대기를 꽂아 처음 상업적으로 제조 판매하게 된 것은 1920년의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아이스케키’는 1930년대 초부터 등장한다. 1932년에 처음으로 아이스케키 제조기계 신문광고가 등장한다.
1937년에 갑자기 아이스케키가 엄청나게 유행하였는데 그 이유는 그 해 여름의 기록적인 폭염 때문이었다.
조선일보 1937년 8월 21자에는 “금년은 예년에 보지 못하든 더위가 오래 동안 계속하여, 여름 장사들이 두둑이 한 몫” 보았으며 “그중에서 가장 고객의 수효를 많이 가진 아이스케키 장사들 중에는 백 개 혹은 이백 개씩 도매로 사서 자전거 행상을 하는 소매업자에게 팔기도 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뚜껑을 열면 차가운 증기가 뽀오얗게 올라오는 사각통에서 꺼내 주는 단팥 아이스케키는 꿀맛이었다. 당시 가격은 5원 정도였다.
이걸 파는 상인들은 나무 아이스박스에 아이스케키를 잔뜩 집어넣고 “아이스케에~끼!”라고 소리치며 팔았다. 골목을 울리던 정다웠던 이 외침 소리는 사라진 추억 속의 옛 정취로 남았다.
그 여름날에 즐겨먹던 얼음과자 ‘아이스케키’ 어린 우리에게 그 시원하고 달콤했던 아이스케키 맛은 이루 표현할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용물은 별거 없고 사카린 물을 얼린 딱딱한 얼음 덩어리에 불과했는데, 왜 그렇게 열광하며 달려들었는지 모르겠다.
아껴서 핥아먹다 보면 반은 녹아 흘러내려 옷을 버리기 일쑤였는데 한꺼번에 먹기 아까워 흘려가며 빨아 먹던 기억이 새롭다.
옛날에는 치마를 입은 여자 아이에게 몰래 다가가 치마를 들춰보고 냅다 도망치거나 팬티의 색깔이나 모양을 보고 약올리는 행위를 ‘아이스케키’라고 했다.
2000년대 중반 무렵까지는 그저 상당히 짓궂은 변태스런 장난 정도로나 인식되던 행위였지만, 시대의 흐름과 의식의 변화에 따라 2000년대 후반 이후부터는 엄연한 범죄 행위로 분류된다.
일반적으로 유아에서 초등학교 저학년의 나잇대에서 이루어지는 행위이며, 고학년으로 올라가면 거진 사라진다.
옛날에는 여자 아이의 치마를 몰래 들추는 행위를 ‘아이스케키’라고 했다.
당한 여자는 비명을 지르거나 깜짝 놀라면서 수치심에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엉엉 울거나, 분기탱천해서 잡아서 죽도록 패주려고 뒤쫓곤 한다.
바지를 입은 사람에게도 ‘아이스케키’를 할 수 있다. 일명 바지 벗기기. 참고로 바지를 내리는 경우 팬티도 같이 잡고 내리거나 아니면 바지를 벗긴 후 팬티까지 벗기는 경우가 많다.
몇몇 여자아이들은 아이스께끼를 한 남자아이에게 감히 본인에게 쪽팔림을 안겨준 대가로 복수할 요량으로 고자킥을 하기도 한다. 그 곳을 맞은 남자아이는 다리 사이를 잡고 울먹이거나 비명을 지르며 데굴데굴 구른다.
2006년 8월 24일에 개봉한 여인광 감독의 영화《아이스케키》포스터1969년의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서울에 살아있다는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엄마 몰래 아이스케키 장사를 하며 차비를 모으는 10살 소년 영래(박지빈)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배우 신애라가 억척스럽게 홀로 아들을 키우는 영래 엄마 역을 맡았으며, 아련한 유년 시절의 향수와 따뜻한 가족애를 그린 작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