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에도 잦아들지 않던 죽비 소리…치열했던 내원사의 여름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등록 2026-08-24 09:08

하안거 해제 앞둔 양산 내원사…산문 닫고 하루 10시간씩 3개월 참선


깨달음 향한 또 한 철의 수행…전국 선원서 1천738명 하안거 정진


양산 내원사에서 하안거 참선하는 비구니 스님들양산 내원사에서 하안거 참선하는 비구니 스님들 [한국불교문화사업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양산=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한낮 고요한 산사에 맑은 목탁 소리가 울리자 스님들이 하나둘 선방(禪房·참선하는 방)으로 모여들었다. 16명의 스님이 조용히 제자리를 찾아 앉은 후에도 입승(立繩·사찰의 규율과 질서를 다스리는 직책) 혜일스님의 목탁은 멈추지 않았다. 스님들만을 향한 목탁 소리가 아니었다. 절을 둘러싼 산천, 그 속에 있는 모든 생물과 무생물에까지 매일 두 차례 '이제 참선에 들겠다'고 고하는 소리였다.


지난 21일 찾은 경남 양산 내원사에선 하안거(夏安居)에 든 비구니 스님들이 아직 꺾이지 않은 무더위의 기세 속 수행 정진 중이었다. 선방에 두 줄로 서로를 등지고 앉은 스님들은 시작을 알리는 세 번의 죽비 소리와 함께 가부좌를 틀고 참선에 들었다. 경전을 펼치지도, 말을 하거나 듣지도 않았다. 손을 가지런히 모으거나 다리에 얹은 채, 눈을 지그시 감거나 뜬 채 오롯이 자기 안으로 들어갔다. 단 10분간 취재가 허용된 선방 안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외부인들이 신경 쓰일 법도 했지만, 스님들은 흐트러짐 없이 꼿꼿했다.


참선 시작에 앞서 목탁을 치는 입승(立繩) 혜일스님참선 시작에 앞서 목탁을 치는 입승(立繩) 혜일스님 [한국불교문화사업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안거(安居)는 불교에서 동절기와 하절기 각각 3개월 동안 출가한 스님들이 한곳에 모여 외출을 삼가고 참선 수행에 전념하는 것을 가리킨다. 석가모니 생존 당시 인도의 출가 수행자들은 한곳에 머물지 않고 돌아다니며 수행하는 유행(遊行)을 했는데 여름철 우기엔 땅속 작은 벌레들이 기어나와 밟아 죽일 위험이 크고 전염병이 도는 경우도 있어 유행을 잠시 중단한 게 안거의 기원이다. 올해 하안거는 음력 4월 보름인 5월 31일 시작해 음력 7월 보름인 오는 27일까지 이어진다. 전국 95개 선원에서 총 1천738명의 스님이 이번 하안거에 참여했다.


조계종 제15교구 본사 통도사의 말사로,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진 내원사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비구니 수행 도량 중 하나다. 안거철을 앞두고 전국에서 내원사에서 여름을 보내고픈 스님들이 방부(房付·수행 사찰에 거처를 정하고 등록하는 일) 신청을 하면 선정된 이들이 모여 각자 맡을 소임을 정하고 3개월 수행을 시작한다.


양산 내원사에서 하안거 참선하는 비구니 스님들양산 내원사에서 하안거 참선하는 비구니 스님들 [한국불교문화사업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하안거의 하루는 참선으로 꽉 채워져 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예불과 함께 1시간, 아침 공양 후 2시간, 점심 공양 후 3시간, 저녁 공양 후 예불과 함께 또 4시간, 도합 하루에 10시간 참선을 한다. 3개월간 외출도 하지 않고 휴대전화도 끄고 말 그대로 세상과 단절한 채 수행에 정진한다. 출가자가 줄고 승려들이 고령화하면서 안거 수행도 예전보다는 덜 고돼 졌다고 하지만, 내원사에선 아침에 발우공양(鉢盂供養·불교 수행자들의 전통 식사법)을 하고 스님들이 한 방에서 함께 생활하는 등 전통 수행 방식을 많이 유지하고 있다고 내원사 지월스님은 설명했다.


발우 정리하는 내원사 지월스님발우 정리하는 내원사 지월스님 [한국불교문화사업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올해 양산의 여름은 특히 무더웠다. 이달 초 양산의 수은주가 42.5도를 가리키며 122년 국내 기상관측 사상 최고 기온을 기록했다. 계곡 좋기로 유명한 천성산 기슭의 내원사도 숨 막히는 폭염을 피해 가진 못했지만, 참선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죽비 소리는 내내 멎지 않았다.


입승 소임을 맡은 혜일스님(충남 논산 법계사)은 "생애 겪어보지 못한 여름 더위였다. 그래서 이번 안거철에는 창문 없는 쪽방촌에 사는 어르신들 생각을 많이 했다"며 "또 이런 더위가 있었기 때문에 선선함이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올여름 내원사를 수행처로 삼은 스님들은 승랍(승려가 된 햇수) 7년의 '새 스님'부터 무려 68년의 여든하나 노스님까지 있었다. 오래 앉아 있는 것이 아직 낯선 스님에게도, 좌복(坐服·앉아서 참선하거나 예불할 때 사용하는 방석)이 한 몸 같은 스님에게도 수행은 어디까지나 각자의 몫이다. 똑같이 앉아 자신만의 화두(話頭·참선의 대상으로 삼는 물음이나 문구)를 파고든다.


입승 혜일스님 좌복 옆에 놓인 죽비입승 혜일스님 좌복 옆에 놓인 죽비 [한국불교문화사업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스님들이 산사에 파묻힌 사이 절 밖에선 많은 일이 있었다. 조계종은 새 총무원장을 뽑는 일로 시끌시끌하고 폭염이나 호우 피해도 잇따랐다. 나라 밖에선 전쟁도 계속됐다. 이곳 스님들이 세상과 단절한 채 수행하는 동안 선거 준비에 분주한 스님들도, 사회를 향해 목소리를 내는 스님들도 있었다.


혜일스님은 "우리처럼 이판(理判·수행과 교학에 전념하는 승려)들이 선방에서 고요하게, 굶지 않고 불도 때고 선풍기도 틀면서 있을 수 있는 건 사판(事判·사찰의 실무를 맡는 승려) 스님들이 있기 때문"이라며 "시절 인연에 따라 주어진 일을 하는 것이지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 것은 없다"고 말했다.


양산 내원사에서 참선하는 비구니 스님양산 내원사에서 참선하는 비구니 스님 [한국불교문화사업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번 3개월의 수행이 어땠는지, 구하던 답을 찾았는지, 하나같이 평온한 스님들의 표정에선 짐작할 길이 없다. 해제를 며칠 앞두고도 답을 찾지 못했다면 혹시 조바심이 들지는 않을까.


혜일스님은 "결단을 내지 못해 조바심이 나는 분이 있다면 그만큼 다짐이 컸다는 것이니 이번 (안거)철을 잘 사신 것"이라며 "조바심이 나지 않는 분이 있다면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같다는 불법을 아시는 분이니 그 또한 잘 사신 것"이라고 말했다.


하안거가 끝나고 산문(山門·절의 바깥문) 밖으로 나와도 스님들의 수행은 끝나지 않는다.


"일상의 모든 수행을 통해 마음을 비우고 나를 내려놓으면서 깨달음의 세계로 한 발 한 발 다가갑니다. 이번 생에 깨닫지 못하면 다음 생에 닿겠죠. 그렇게 가기 위해 한 철 한 철을 납니다."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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