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기계·풍경이 뒤섞인 화면…에티오피아 작가 베르하누展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등록 2026-06-07 08:10

에스더쉬퍼 서울서 아시아 첫 개인전 '셀룰러 메모리'


추상 회화로 생명·기술 관계 재해석…신작 6점 선보여


메리코켑 베르하누 개인전 전시 전경메리코켑 베르하누 개인전 전시 전경 [에스더쉬퍼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서울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운 에티오피아 출신 작가의 추상 회화를 만나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서울 한남동 에스더쉬퍼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메리코켑 베르하누(Merikokeb Berhanu)의 아시아 첫 개인전 '셀룰러 메모리'(Cellular Memory)는 신작 회화 6점을 선보인다.


메리코켑 베르하누 작가메리코켑 베르하누 작가 [에스더쉬퍼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1977년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서 태어난 베르하누는 자국의 전통 미술과 현대적 조형 언어를 결합해 독자적인 회화 세계를 구축해온 작가다.


초기에는 현지 미술 인프라가 부족해 작품 활동에 어려움을 겪었다. 물감을 구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고, 미술 시장이 형성되지 않아 작업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도 어려웠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여성 작가들의 작업 지속을 위한 예술 공동체 '누비아 아트 스튜디오'를 설립해 창작과 전시를 병행했다.


이후 아프리카 현대미술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2017년 미국으로 이주해 활동 무대를 넓혔다. 이러한 경험은 그의 작업에 문화적 정체성과 혼성적 시각 언어를 형성하는 배경이 됐다.


베르하누는 2022년 제59회 베네치아 비엔날레 본전시에 참여하며 국제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고, 주요 미술관과 컬렉션에 작품이 소장되며 입지를 다졌다.


메리코켑 베르하누 개인전 전시 전경메리코켑 베르하누 개인전 전시 전경 [에스더쉬퍼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그의 그림은 세포 분열이나 배아 형성, 씨앗 발아 같은 생명의 근원적 과정을 시각화하는 데서 출발한다. 에티오피아 전통 미술의 원색과 반복적 패턴, 장식적 기하학성을 현대 추상회화와 결합해 독특한 화면을 만든다.


이번 전시 제목은 세포가 환경과 경험을 기억한다는 생물학적 개념에서 차용됐다. 이는 작가에게 에티오피아와 미국, 전통과 현대를 가로지르며 형성된 기억과 정체성의 층위를 의미한다.


메리코켑 베르하누 작 '무제 CXVI'메리코켑 베르하누 작 '무제 CXVI' [에스더쉬퍼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전시에서는 최근 작업 경향을 보여주는 신작들이 소개됐다.


'무제 CXVI'는 망토를 두른 것 같은 인물이 두 발을 드러낸 채 양손에 무거운 물체를 들고 균형을 유지하려 애쓰는 모습이 담겼다. 둥근 유기적 형태와 기하학적 구조가 결합한 인물은 신체를 넘어 세포와 풍경을 연상시키며, 내부와 외부가 뒤섞인 것처럼 보인다.


베르하누가 소속된 아디스파인아트 갤러리의 설립자 라켑 실레는 "작가는 세포 단위의 미시적 균형부터 인간의 마음과 정신에 이르기까지 삶 전반의 균형을 시각화한다"고 설명했다.


메리코켑 베르하누 작 '무제 CXIV'메리코켑 베르하누 작 '무제 CXIV' [에스더쉬퍼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무제 CXIV'는 화면 왼쪽 하단에 작가의 작업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발 형상이 자리하고, 그 주변으로 세포와 유기체를 연상시키는 둥근 이미지들이 겹겹이 배치됐다. 중앙의 길게 뻗은 초록색 형상 내부에는 전자 회로를 떠올리게 하는 패턴이 촘촘히 새겨져 있어, 유기적 생명 구조와 인공적 시스템이 한 화면 안에서 맞물린다.


이처럼 신체의 일부와 기계적 회로가 뒤섞인 구성은 자연과 기술을 분리된 영역이 아닌 하나의 연속된 체계로 바라보는 시선을 보여준다.


에스더쉬퍼 서울은 "이번 전시는 아프리카 미술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커지는 흐름 속에서, 아프리카 현대미술의 다층적 맥락을 한국 관객에게 소개하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전시는 8월 14일까지.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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