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분투칼럼] 아프리카 원자력 시장의 기회…한국이 주목할 이유
티모시 디킨스 주한남아공상공회의소(SAFCHAM) 회장
티모시 디킨스 주한남아공상공회의소 회장 겸 법무법인 대륙아주 외국변호사 [티모시 디킨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편집자 주 = 연합뉴스 글로벌문화교류단이 국내 주요대학 아프리카 연구기관 등과 손잡고 '우분투 칼럼'을 게재합니다. 우분투 칼럼에는 인류 고향이자 '기회의 땅'인 아프리카를 오랜 기간 연구해온 여러 교수와 전문가가 참여합니다. 아프리카를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분석하는 우분투 칼럼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우분투는 '당신이 있어 내가 있다'는 뜻의 아프리카 반투어로, 공동체 정신과 인간애를 나타냅니다.]
원자력 에너지는 많은 한국인이 아프리카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분야는 아닐 것이다. 아프리카는 일반적으로 핵심 광물·인프라 개발·재생에너지·농업 또는 성장하는 소비시장과 더 자주 연관된다. 그러나 조용히, 공론의 장 밖에서, 여러 아프리카 국가는 원자력 에너지를 장기 국가개발 전략의 일부로 포함하기 시작했다.
현재 아프리카 원자력 부문은 여전히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여전히 아프리카 대륙에서 유일하게 상업용 원자력발전소를 가동하는 국가다. 이집트는 엘다바 원전 프로젝트를 통해 아프리카의 다음 원자력발전소를 건설 중이다. 가나, 케냐, 나이지리아와 같은 국가들도 향후 원전 도입을 위해 필요한 법적·규제적·제도적 기반을 단계적으로 마련하고 있다. 아시아·유럽·미국과 비교하면 이러한 움직임은 아직 소박하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점 때문에 지금이 중요하다.
이집트 최초의 원자력발전소 '엘다바 원전' [타스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 아프리카의 원자력 전환
아프리카의 미래 에너지 구도는 아직 형성 중이다. 아프리카 각국 정부는 인구 증가, 도시화 확대, 산업화 진전으로 빠르게 늘어나는 전력 수요에 대응하는 동시에, 지속적인 전력 부족과 불안정한 전력망, 저탄소 전환까지 추진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재생에너지는 아프리카의 미래 에너지 믹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다만 많은 아프리카 정책 입안자들에게는, 재생에너지만으로 산업화와 장기적인 기저 전력 수요를 감당할 수 있는지가 점점 더 중요한 쟁점이 되고 있다. 이는 제조업, 광업, 가공 산업, 디지털 인프라 확대를 추진하는 국가들에 특히 중요한 문제다. 안정적인 전력 공급은 더 이상 단순한 에너지 문제가 아니라 경제적 차원의 경쟁력과 직결되는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폴 카가메 르완다 대통령 [신화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지난 5월 19일 르완다 수도 키갈리에 열린 '아프리카 원자력 에너지 혁신 정상회의'(NEISA 2026) 개막식에서 연설하는 폴 카가메 르완다 대통령
◇ 아프리카에서 원자력이 다시 주목받는 이유
원자력 에너지는 이러한 배경에서 아프리카의 장기 에너지 전략 논의에 등장한다. 원자력 도입을 검토하는 아프리카 국가들에 원자력은 단순한 전력 생산 수단에 그치지 않는다. 원자력은 산업정책, 에너지 자립, 장기적 안정성, 나아가 경제 구조 전환과도 연결되는 전략적 선택으로 받아들여진다.
또한 많은 아프리카 정책결정자는 원자력을 재생에너지를 대체하는 수단으로 보기보다는, 산업 성장을 지원하면서 장기적으로 탄소 집약도를 낮추기 위한 다각화된 에너지 믹스의 일부로 보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역시 아프리카 내 원자력 개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현재 20여개 아프리카 국가가 원자력 에너지 도입을 다양한 형태로 검토하고 있다.
◇ 한국의 전략적 기회
이와 같은 변화는 한국에 현재보다 더 면밀히 검토해야 할 전략적 기회를 제공한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원자력 산업 기반을 보유한 국가 중 하나다. 수십년간 국내 원전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엔지니어링, 제조, 프로젝트 수행 역량을 축적했다. 최근에는 첨단 원자로와 소형모듈원전(SMR)을 중심으로 국제 원전 프로젝트 및 글로벌 공급망에서 참여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한국의 원자력 경쟁력이 단순히 원자로를 건설하는 능력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의 기관과 기업들은 프로젝트 개발 역량, EPC(설계·조달·시공) 및 EPCM(상세설계·구매·시공관리) 역량, 운영자 교육, 규제 협력, 장기 운영·유지보수 지원, 핵연료 주기 계획, 첨단 부품 제조 역량까지도 제공할 수 있다. 실제로 두산에너빌리티와 같은 기업들은 이미 글로벌 SMR 공급망에서 점점 더 가시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안전성이 중요한 원전 핵심 부품과 차세대 원자로 제조 분야에서 존재감을 확대하고 있다.
‘K-원전, 세계로!’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지난 5월 14일 중구 무역보험공사에서 열린 제1차 원전수출전략협의회에서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김동철 한국전력 사장, 김회천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등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hama@yna.co.kr
한국 정부도 최근 'K-원전 원팀' 전략을 발표하며 원전 수출을 더욱 체계적으로 추진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이 전략은 한국전력공사, 한국수력원자력 등 주요 기관의 역할을 조율하고, 수출 전략과 금융 지원을 연계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러한 통합적 접근은 아프리카에서 특히 중요할 수 있다. 아프리카의 원전 프로젝트는 기술 제안만으로 수주하기 어려운 시장이기 때문이다.
◇ 아프리카 원전 시장의 핵심은 단순 공급이 아닌 장기 파트너
다만 아프리카의 원자력 시장에는 기회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진입 조건도 함께 존재한다. 아프리카에서 원전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기술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아프리카의 원자력 시장에서는 장기 금융 지원, 정부 간 협력, 규제 체계 구축 지원, 인력 양성, 현지화 전략, 그리고 신뢰에 기반한 장기 파트너십이 함께 요구된다. 즉 아프리카의 원전 시장은 단순히 기술이나 설비를 수출하는 시장보다는, 장기적인 관계 형성과 전략적 협력이 중요한 시장에 가깝다. 에너지 안보와 국제 협력이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지정학적 특성도 중요하게 고려하여야 한다.
이집트의 엘다바 원전 프로젝트는 이러한 특징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러시아 로사톰이 건설 중인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원자력발전소 건설 사업이 아니다. 프로젝트 비용의 약 85%가 차관을 통해 조달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로사톰은 연료 공급, 인력 교육, 운영 협력까지 함께 제공하고 있다.
이집트 사례는 향후 아프리카 원전 시장이 개별 인프라 사업 단위의 거래보다는 포괄적이고 장기적인 전략적 파트너십을 중심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보여준다. 한국에 대한 시사점도 분명하다. 아프리카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개별 기술 판매에 그치기보다, 금융, 규제 협력, 인력 양성, 운영 지원까지 포괄하는 장기 파트너십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 남아공의 전략적 중요성
남아공은 그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대다수의 아프리카 국가와 달리, 남아공은 쿠벅 원자력발전소를 통해 수십 년간 상업용 원전 운영 경험을 축적했다. 또한 원자력 규제기관, 기술 전문성, 산업 역량을 보유하고 있어 원전을 처음 도입하려는 국가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위치에 있다.
남아공 쿠벅 원자력 발전소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동시에 남아공은 향후 원자력 경로를 재검토하고 있다. 과거 페블베드 모듈형 원자로(PBMR) 프로그램은 결국 중단되었지만, 최근 지속되는 에너지 위기에 대한 현실적 해법을 찾는 과정에서 SMR과 장기 원자력 계획에 대한 관심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
남아공의 통합자원계획 역시 향후 에너지 믹스의 일부로 2039년까지 5천200㎿ 규모의 신규 원자력 설비를 배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은 남아공을 단순한 잠재적 시장이 아니라, SMR 개발·부품 제조·인력 양성·운영 및 유지보수·원전 계속운전·향후 신규 원전 사업에서 협력할 수 있는 전략적 파트너로 볼 필요가 있다.협력 가능 분야로는 SMR 개발, 부품 제조, 인력 양성, 운영·유지보수 지원, 원전 계속운전 사업, 향후 신규 원전 건설 프로그램 등이 있다.
◇ 원전 도입 논의가 진행 중인 국가들
가나와 케냐는 원전 도입을 위한 제도적 준비를 비교적 꾸준히 진행하고 있는 국가로 평가된다. 나이지리아 역시 막대한 장기 전력 수요를 고려할 때, 아프리카의 에너지 전환 논의에서 제외하기 어려운 국가다.
특히 나이지리아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나이지리아의 인구는 2050년까지 약 4억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빠른 도시화와 산업 성장을 고려하면 향후 전력 수요는 많이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여전히 상당수 인구가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받지 못한다. 잦은 정전은 가계와 산업 모두에 지속적인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원자력이 나이지리아의 단기 전력난을 해결하기는 어렵다. 다만 장기적으로는 에너지 계획, 산업 발전, 에너지 안보 전략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원자력이 하나의 선택지로 검토될 가능성이 있다. 한국에 나이지리아는 단기적인 원전 수주 대상보다, 기술 협력·인력 양성·타당성 조사·금융 지원·규제 협력 등을 중심으로 장기적인 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 국가에 가깝다.
나이지리아 단고테 석유 공장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가나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가나는 아프리카 내에서 원전 도입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비교적 앞서 마련하고 있는 국가 중 하나이다. 향후 원자력 협력 가능성을 두고 미국, 중국, 한국 관련 이해관계자 등 여러 국제 파트너와 접촉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케냐도 이미 한국원자력연구원(KAERI)과 원자력 관련 협력 약정을 체결한 바 있다. 이는 한국의 기술 및 연구 협력이 아프리카 일부 국가에서 이미 초기 기반을 형성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 이미 시작된 글로벌 경쟁
아프리카 원자력 시장은 아직 초기 단계에 있지만, 주요국 간 향후 원자력 시장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은 이미 시작했다. 러시아는 엘다바 원전 프로젝트를 통해 이미 이집트 원전 시장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 중국 역시 가나의 원자력 논의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프리카 내 우라늄 투자 확대 등을 통해 원자로와 핵연료 관련 이해관계를 넓혀가고 있다.
미국 기업들도 고순도 저농축우라늄(HALEU) 연료와 차세대 원자로 기술을 중심으로 첨단 핵연료 주기와 SMR 분야에서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은 이미 주요국 간 치열한 경쟁이 진행되고 있는 아프리카 원자력 시장에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한국은 분명한 강점을 가지고 있다. 한국은 원전 프로젝트 수행 역량, 제조 기반, 대형 인프라 사업을 효율적으로 추진해 온 경험 측면에서 국제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한국의 경제발전 경험은 아프리카 시장에 울림을 줄 수 있다. 많은 아프리카 정책결정자는 한국을 산업화, 기술 역량, 장기적인 국가 계획을 통해 빠르게 성장한 국가로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점은 한국이 아프리카와 원자력 협력을 추진하는 데 있어 신뢰를 형성할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다.
◇ 원자로를 넘어선 장기적 한·아프리카 파트너십
결국 아프리카 원자력의 미래는 단순한 원자로 수출의 관점에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 더 큰 그림은 장기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것이다. 아프리카는 증가하는 에너지 수요, 인구 성장, 산업화 열망을 바탕으로 중요한 우라늄과 핵심 광물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은 원자력 기술, 산업 기반, 금융 경험, 원전 운영 전문성 등을 갖추고 있다.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원자력 협력은 향후 한·아프리카 전략 협력의 주요 축으로 발전할 수 있다.
원전 산업 수출상담회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지난 4월 22일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제1전시장에서 개막한 '2026 부산국제원자력산업전'에서 수출 상담이 진행됐다. 사흘간 열린 이번 행사에는 19개국의 전력, 원자력 관련 기업 130곳이 참가해 소형모듈원자로(SMR) 등 세계 원전 시장의 최신 기술을 소개했다. 한국원자력연차대회와 제25차 태평양연안국 원자력회의가 동시에 개최됐다. sbkang@yna.co.kr
한국은 아프리카를 단순한 수출국 또는 광물 자원 공급처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 한국은 이른 시점부터 전략적이고 협력적인 방식으로 아프리카의 에너지 전환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 아프리카의 미래 에너지 구도는 아직 형성 중이다. 한국은 그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술과 경험을 품고 있다. 이제는 한국과 아프리카가 원자력 협력을 통해 장기적인 에너지 파트너십을 구축해 나갈 시점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연합뉴스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티모시 주한남아공상공회의소(SAFCHAM) 회장
현 대륙아주 변호사, 아프리카 실무 총괄, 남아프리카공화국 프리스테이트대학(University of the Free State) 상학사(B.Com) 및 법학사(LL.B.) 취득, 주한 남아공상공회의소(SAFCHAM) 회장, 법무부 자문위원, 월드지식포럼 및 한-아프리카 정상회의 고위급 패널 좌장 역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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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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