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로] 그 아버지에 그 아들, 밴플리트 부자
한국 사랑한 6·25 전쟁영웅…군인정신과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상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선임기자 =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6·25 전쟁 발발일과 현충일, 제2연평해전일 등 나라 위해 피 흘린 순국선열을 기리는 기념일이 집중돼 있다. 이 뜻깊은 달의 '6·25 전쟁 영웅'으로 미국인 밴플리트 부자(父子)가 선정됐다. 제임스 밴플리트 육군 대장은 6·25 전쟁 당시 미8군 사령관을 맡아 중국군의 인해전술을 이겨내고 전선을 위도 38도선 이북으로 끌어올린 명장이자 오늘날 대한민국 번영의 시작점을 만든 은인이다. 그의 아들 밴플리트 주니어 대위도 폭격기 조종사로 자원해 6·25 전쟁에 참전했다. 벽안의 아버지와 아들이 인연 하나 없던 이역만리 낯선 땅에서 저항할 여력도 없던 약자를 도왔으니 영웅으로 불릴만하다.
밴플리트 부자 제임스 밴플리트 미국 육군 대장(오른쪽)과 아들 밴플리트 주니어의 마지막 만남이 된 밴플리트 대장의 만60회 생일잔치 장면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밴플리트는 군인정신의 화신(化身)이었다. 그리스 공산화 저지를 이끄는 등 유럽 전선에서 활약하던 그는 1951년 봄 매슈 리지웨이 장군의 후임으로 미 육군 제8군 사령관을 맡았다. 중국의 공세가 본격화하면서 유엔 연합군이 38도선 이남으로 밀렸던 위태로운 시기였다. 참모들은 일본으로 지휘부 후퇴를 건의했지만 "난 이기려고 왔다. 함께 하기 싫다면 집으로 돌아가라"며 참군인다운 면목을 보였다. 그는 흐트러진 전선을 추스르고 공세로 전환해 압도적 병력으로 밀고 내려오는 중국 인민군을 정전협정 체결 몇 달 전까지 막아내고 명예롭게 예편했다.
밴플리트 장군은 사회 지도층이 그에 걸맞은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와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상이기도 했다. 고위 장성인 만큼 자식을 안전한 지역에 배치할 수도 있었으나 아들 밴플리트 주니어는 당시 가장 위험했던 한반도 전선에 자원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다. 용감한 선택은 가족에겐 비극으로 끝났다. 밴플리트 주니어는 1952년 4월 폭격기를 몰고 적지로 출격했다 격추된 뒤 실종됐다. 유엔군은 대대적 수색에 나섰으나 아버지 밴플리트는 아들 찾기 작전을 중단시켰다. 사상자와 포로가 추가로 나오는 걸 원치 않아서였다. 부정(父情)보다 지휘관의 본분을 중시한 것이다. 당시 그는 "내 자식 구하려 다른 장병들 목숨을 위태롭게 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는 증언이 전해진다.
컬러로 변환한 밴플리트 미국 육군 대장의 사진. [국가보훈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밴플리트 장군은 퇴역 후에도 제 손으로 지켜낸 대한민국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표현을 자주 했다고 한다. 그리고 말년까지 이를 행동으로 증명했다. 플로리다 출신인 그에게 '제2의 고향'은 한국이었다. 아들을 묻은 곳이 가슴뿐 아니라 한국 땅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 마음을 한국에 두고 간다"며 귀국한 밴플리트는 전후 폐허가 된 한국을 도우려고 미국 전역을 돌며 구호 자금을 모았다. 특히 이런 활동이 일시적 원조에 그치지 않도록 '코리아 소사이어티'를 설립했다. 이 단체는 지금도 한미 동맹 강화에 앞장서는 대표적 친한(親韓) 조직이다. 이곳에서 매년 주는 '밴플리트 상'은 한미 우호 관계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한국 강군의 초석도 그가 놓았다. 밴플리트 장군은 '한국 육군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는 6·25 전쟁 초반 한국 육군이 지리멸렬 밀린 것은 장비 열세 외에도 장교들의 자질 부족 탓이 크다고 봤다. 그래서 출신 학교인 웨스트포인트 모델을 이식해 육군사관학교를 정규 4년제 군사학교로 격상하도록 도왔다. 야전훈련소 창설, 포병대 창설, 육군 사단 증설 등도 밴플리트가 이끌었다. 육사 교정에 밴플리트 동상이 세워진 건 이런 이유에서다. 꽃다운 나이에 산화해 고향으로 못 돌아간 밴플리트 주니어의 흉상도 오산 공군기지에 있다. 아마도 대한민국은 밴플리트 부자의 눈에 인생을 바쳐 지켜야 할 만한 가치가 있었던 나라였나 보다. 두 영웅의 명복과 밴플리트 가문의 번영을 기원한다.
밴플리트 주니어 흉상 경기도 오산의 미 7공군사령부에 있는 제임스 밴플리트 주니어 공군 대위 흉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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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sl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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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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