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 이하석 시인 산문집 『함께 피어 서로 쬐다』 펴내

박상봉 사회부장 기자

등록 2026-06-01 12:48

거장의 시선으로 담아낸 우리 시대의 기억과 상처!

서로를 비추며 함께 살아가는 의미를 생각하는 책!

 이하석 시인 산문집 『함께 피어 서로 쬐다』(사진=모악 제공)“담담하고 그윽한 시선으로 이 세계의 음지를 응시”하는 시인으로 불리는 이하석 시인이 산문집 『함께 피어 서로 쬐다』를 펴냈다. 『함께 피어 서로 쬐다』에는 코로나19 시기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문학과 삶에 대한 시인의 웅숭깊은 사유가 담겨 있다. 시와 예술, 기억과 장소, 인간과 시대에 대한 깊은 성찰이 편편마다 스며 있다.

『함께 피어 서로 쬐다』는 1971년에 등단하여 반세기 넘게 한국 현대시의 거대한 물길을 헤쳐온 이하석 시인이 문학을 대하는 자세와 세계를 바라보는 인식을 오롯이 담고 있다. 사소한 풍경과 사물에서도 시대의 결을 읽어내고, 시간의 기억과 흔적을 사유의 언어로 전환 시키는 문장으로 시인의 내면을 묵묵히 드러낸다.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는 『함께 피어 서로 쬐다』에서 이하석 시인은 자신만의 시 읽기와 문학론, 노년의 감각, 도시의 기억, 자연과 생태, 팬데믹 이후의 삶에 관한 사색의 흔적을 담백하게 기록해 놓았다.

1부 「함께」는 시와 시인, 문학과 존재의 의미를 짚어본다. 2부 「피어」는 계절과 자연, 생명의 움직임 속에서 인간 삶의 결을 읽어낸다. 3부 「서로」는 사라져가는 장소의 기억과 공동체의 감각, 문학과 시대를 톺아본다. 4부 「쬐다」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인간 사회의 변화와 생태적 위기를 이야기한다.

가난과 연민, 고요한 슬픔의 세계

『함께 피어 서로 쬐다』에는 이하석 시인만의 넉넉한 사유와 정확한 문장이 돋보이는 152편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백석」은 가난과 연민, 고요한 슬픔의 세계를 통해 백석 시의 본질을 더듬어가면서 “환한 슬픔”이라는 표현으로 시인의 정서를 풀어낸다.

「이장희」는 수줍음과 내면의 고독으로 대구 근대문학의 감각적 뿌리를 복원하고, 「적」은 김수영 시의 투쟁성과 윤리의식을 오늘의 현실과 연결해서 읽어낸다.「폐허의 미학」은 독일 화가 안젤름 키퍼의 전시를 매개로 폐허와 기억, 전쟁과 인간 존재를 돌아본다. 시인은 무너진 문명과 폐허의 풍경 속에서 인간 존재의 연약함과 회복의 가능성을 발견해 낸다.

「향촌동 랩소디」는 백조다방, 르네상스, 꽃자리다방 등 대구 향촌동 문화예술 공간의 기억을 복원한다. 근대 대구 문단과 예술가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공간들에서 사라져가는 도시의 기억과 장소의 정서를 되살려낸다.「큰금계국」은 도시 곳곳에 번져가는 외래식물 문제를 말하면서 생태계 교란과 인간 중심 개발 논리를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산불」은 기후 위기 시대의 재난과 공동체 붕괴 문제를 짚으며 생태적 윤리와 회복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느린 우체통」은 시간이 지나 도착하는 편지로 인간관계와 기다림의 감각을 환기하며, 「이야기 할매」는 사라져가는 구술 문화와 공동체적 서사의 의미를 되새겨 보고, 「가을꽃 앞에서」는 계절의 쇠락 속에서도 다시 살아나는 감각과 생의 회복력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팬데믹 시기를 다룬 「마스크」 「백신」 「비대면」 「보복」 등은 코로나19 이후 인간 사회의 변화와 고립, 연대의 문제를 성찰한다. 「김종철」은 생태사상가 김종철을 회고하면서 성장 중심 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한편, 인간과 자연이 공동체의 새로운 관계 맺기를 희망한다.

인간은 서로를 비추며 살아가는 존재우리 문화에 대한 폭넓은 시선과 깊이 있는 사유를 지닌 이하석 시인은 대구 향촌동과 북성로, 근대 골목 등 특정 지역의 기억과 장소성을 꾸준히 문학으로 복원해 왔다. 최근에는 생태와 공동체, 재난과 인간의 윤리 문제를 꾸준히 천착하면서 한층 원숙해진 세계관을 보여주고 있다.

『함께 피어 서로 쬐다』는 이하석 시인이 오랫동안 갈고 닦아온 문학적 감각으로 포착한 다양한 삶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독자들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기게 될 것이다. 이 책의 제목 “함께 피어 서로 쬐다”가 상기 시켜주듯이, 인간은 홀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함께 피어서 서로를 비추며 그 빛을 쬐면서 살아가는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이하석 시인은 1948년 경상북도 고령에서 태어났다. 1971년 『현대시학』에 시가 추천되어 등단했으며, 시집 『투명한 속』 『우리 낯선 사람들』 『측백나무 울타리』 『금요일엔 먼데를 본다』 『것들』 『연애 간(間)』 『천둥의 뿌리』 『기억의 미래』 『해월, 길노래』 등을 펴냈다. 김수영문학상, 도천문학상, 김달진문학상, 김광협문학상, 이육사시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김만중문학상 등을 수상했다.이하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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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쓰는 게 아니라 만드는 거라고 했다. 고등학교 때 이하석 시인의 강연을 들으며 새겨둔 말이다. 시를 제대로 쓸 때까지는 부단히 시를 만들어야 한다고, 시를 가르치는 선생으로 살면서 시인의 말을 슬쩍 변용해 자주 써먹었다.이 산문집에는 마스크를 덮어쓰고 살던 비대면의 시간이 담겨 있다. 나는 시인이 어떻게 문장을 만들며 전대미문의 시절을 통과했는지 알게 되었다. 절제와 대상과의 거리 두기가 그이의 시였듯이 산문의 문장 또한 낮고 단아하게 불 켠 씀바귀꽃의 빛깔 같다. 이하석 시인은 ‘고요 그대로 나인 상태’를 사유의 종착지로 생각하고 계시는 듯하다. 그 고요 속에서 가창 골짜기 새들아, 이제는 마스크 벗고 울어라.
이하석 시인 산문집 『함께 피어 서로 쬐다』표지 (사진=모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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