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인의 젖을 아이가 빨고 있었다
핏덩이를 등에 업은 어미의 자장가가 들리는 듯한데
둘째 아들도 며느리도 큰아들도 눈앞에서 잡혀갔어
북촌리의 봄
박은영
한 여인의 젖을 아이가 빨고 있었다
말 못하는 어린 것의 울음이 서도*에서 부는 바람소리 같았다
핏덩이를 등에 업은 어미의 자장가가 들리는 듯한데
젖몸살을 앓던 아침, 붉은 비린내가 퉁퉁 불어 마을을 돌아다녔다
새들이 총소리를 물고 둥지로 날아갔다
소란스런 포란의 방향, 꽃을 내준 가지가 동쪽으로 기울었다
그것은 서쪽에서 해가 뜰 일
서모에서 부는 바람소리가 말 못하는 어린 것의 울음 같았다
뚝뚝, 지는 목숨들 사이
아이는 나오지 않는 젖을 한사코 빨아대고 있었다
어미를 살려내려는 필사적인 몸부림,
그 힘으로 동백꽃이 피고
젖먹던 힘을 다해 봄이 오고 있었다.
*서우봉
ㅡ제2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시부문 당선
제주 4·3 평화공원에 설치된 조형물 ‘비설(飛雪)’. 1949년 1월 토벌대를 피해 산으로 피신하다 눈더미 속에서 숨진 채 발견된 변병생(당시 25세) 모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오늘이 제78주년 제주 4·3 희생자 추념일이다. 현대사의 비극인 제주 4·3 사건의 희생자를 추모하며, 몇 해 전에 제주4·3평화공원에 다녀온 기록을 뒤적여 본다.
제주4·3평화공원은 4·3으로 발생한 민간인 학살과 당시 제주도민의 처절했던 삶의 기억을 추념하고 화해와 상생의 미래를 열어가기 위한 평화·인권 공원이다.
제주4·3이란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하여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미군정기에 발생하여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 이르기까지 7년여에 걸쳐 지속된, 한국현대사에서 한국전쟁 다음으로 인명 피해가 극심했던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1957년 소설가 김석범의 《까마귀의 죽음 鴉の死》이 처음 발표되면서 4·3역사는 세상에 얼굴을 내민다. 뒤이어 1963년 4·3직전 도일한 역사학자 김봉현이 김민주와 공저로 《4·3무쟁투쟁사》를 출간하며 더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일본에서도 4·3진상규명을 위한 다양한 운동이 일어났다.
반세기 가까이 이념적 누명을 쓰고 지하에 갇혔던 4·3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피나는 기억투쟁이 있었다. 이런 노력에 의해 2000년 4·3특별법이 제정되었다. 4·3은 은폐·왜곡·억압의 긴 타널을 벗어나 이제 평화·인권·화해·통일의 상징으로 거듭나고 있다.
역사를 가정해서 말할 수 없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정하여 말한다면 어떨까? 가령 4·3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이 제주 땅에 극도의 비극적인 역사는 출현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통곡과 반목과 질시의 고통스런 아수라의 세계 역시 만나지 않았을 것이다.
허나, 역사는 이미 일어난 과거 사실이므로 당연히 되돌릴 수 없다. 더불어 이념의 대립과 충돌의 소용돌이 속에서 억울하게 희생된 희생양들의 아픔과 슬픔도 지워질 수 없다. 그것은 우리의 안쪽과 바깥쪽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수시로 우리를 힘들게 하고 있다. 그것을 걷어내지 않으면 미래는 암울할 뿐이다. 흔히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는데, 더는 참담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지나간 4·3의 역사를 똑바로 직시하고 현재와 미래를 살아가는 거울로 삼아 마땅하다. (제주4·3평화문학상 심사평 부분 인용)
4·3은 제주만의 4·3으로 머물러서는 안된다. 그 흔적을 살펴보는 일에 머물 것이 아니라 이를 뛰어넘어 보다 세계사적인 범위로 의미를 확장해나가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런 점에서 4·3을 기록으로 남기고 문학과 예술로 승화시키는 일은 매우 바람직한 의미 확장의 방법이라고 본다.
4·3이 머우꽈?
‘머우꽈’는 표준어 ‘무엇입니까’의 제주도 말이다. 제주4·3을 알기 쉽게 풀어 쓴 입문서로 제주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가 발행하여 현재 제주4·3평화재단이 제작·배포하고 있다. 제주4·3평화재단 홈페이지에서 쉽게 다운받아 볼 수도 있다.
제주4·3평화공원 1전시실 ‘역사의 동굴’ 입구(사진=박상봉 기자)
제주4·3평화공원전 1시실 ‘역사의 동굴’로 들어서는 입구가 초입부터 을씨년스럽다. 4·3 당시 피신처로 활용되었던 천연동굴을 모티브로 조성된 이 동굴을 지나면 4·3에 대한 정명(正名)을 기리며 비문을 새기지 못한 백비(白碑)가 누워있다.
2전시실 ‘흔들리는 섬’은 해방전 국제정세와 제주도, 해방 이후 도민들의 자치 열망, 4·3의 도화선이 된 1947년 3·1발포 사건, 총파업과 탄압의 사건들이 1948년 4·3 봉기로 이어지는 과정 등을 표현하고 있다.
2전시실 ‘흔들리는 섬’ 일본 요세로 전락한 당시 제주도 모습.
1947년 3월 1일, 제28주년 3·1절 기념 제주도대회가 열렸고, 제주읍에서는 북국민학교의 3·1절 행사가 오후 2시에 끝나자 군중들은 가두시위에 나섰다.
시위대가 관덕정을 거쳐 서문통으로 빠져나간 뒤 관덕정 부근에 있던 기마경찰의 말발굽에 어린아이가 치여 다쳤다.
이때 기마경찰이 다친 아이를 그대로 두고 지나가자 흥분한 군중들이 돌을 던지며 항의했고, 관덕정 부근에 포진했던 무장경찰은 군중을 향해 총을 쏘았다.
경찰의 발포로 주민 6명이 희생되었고, 이 사건이 기폭제가 되어 그때까지 큰 소요가 없었던 제주 사회가 들끓기 시작했다.
제주4·3의 도화선이라 불리는 ‘3·1사건’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경찰의 발포로 주민 6명이 사망한 3·1사건에 항의하여 1947년 3월 10일부터 세계적으로도 유래가 없는 민·관 합동 총파업이 시작됐다.
제주도민의 민·관 총파업에 미국은 제주도를 ‘붉은 섬’으로 지목했다. 본토에서 응원경찰이 대거 파견됐고, 극우청년단체인 서북청년회(서청) 단원들이 속속 제주에 들어와 경찰, 행정기관, 교육기관 등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빨갱이 사냥’을 한다는 구실로 테러를 일삼아 민심을 자극시켰다. 이는 4·3사건 발발의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당시 한반도는 분단의 위기에 봉착하고 있었다. 남로당 제주도당은 이반된 민심과 5·10단독선거 반대투쟁을 결합하여 경찰과 서청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선·단정 반대를 기치로 무장봉기를 일으키게 된다.
1948년 4월 3일 새벽 2시, 한라산 기슭 오름마다 봉화가 붉게 타오르면서 남로당 제주도위원회가 주도한 무장봉기가 시작되었다. 350명의 무장대는 12개 경찰지서와 서북청년회 등 우익단체 단원의 집을 지목해 습격했다.

3전시실 ‘바람타는 섬’은 1948년 4월3일 새벽에 일어난 무장봉기의 발생 과정과 배경, 향후 초토화 작전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4전시실 ‘불타는 섬’은 초도화 작전과 그 이후 한국전쟁 기간까지 제주에서 자행된 학살의 면모를 다루고 있다.
맑고 흰죽*
변희수
불편해지면 죽을
끓입니다
식사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만
가볍게 훌훌 넘기고 싶다는 말
어제의 파도는 우물우물 삼켜도 된다는 그 말
그게 잘 안 돼요
부드럽게라는 말이 목에 걸려요
당분간 절식이나 금식
이상적인 처방이라는 건 알아요 미련이 생겨서
나는 죽을 먹습니다
맑고 흰죽을
한 숟가락 또 한 숟가락
돌아서서 코를 풀었죠
조금 묽어졌다는 뜻이지만
눈물은 짜니까
빨간 눈으론 돌아다닐 수 없으니까
그런 날은 손바닥마다 노란 가시선인장꽃
울지 않은 척 했어요
얹혔을 거라고 수군거릴 때마다
이 고비는 무사히 넘길 수 있을까
생각에 걸려
어제도 오늘도 삼키죠 백번도 더 생각하죠
죽이고 죽이다 보면 또 다시 죽
이렇게 맑고 흰죽
목이 메여요 달랑 죽 한 그릇인데
눈이 부셔요
새로 태어난 것처럼
몸속을 돌아다니는 물기가
어제의 죽이라 하겠지만
밤마다 복닥복닥 탕! 탕!
죽 끓이는 시간이 또 다시 찾아오고
죽은 조금만 쑤어도 넘치게 한 솥이에요
후회도 한 솥 미움도 한 솥이어서
나는 먹고 또 먹을 테죠
다행이다 싶지만
맑고 흰,
무명의 시간들
좀 서운해요 돌아서면 고프고
어떻게든 달래고 싶은데
받는 게 이것 밖에 없는 이 속이
내 속이 그렇다는 거죠 지금
ㅡ제8회 제주4·3평화문학상 시부문 당선
“이 작품은 4·3사건의 피해자인 진아영 할머니에 대해 그리고 있다. 그녀는 턱과 이가 없어 평생 소화불량으로 인한 위장병과 영양실조를 몸에 달고 살았다 한다. 이 작품은 ‘죽’을 통해 불편한 몸을 떠올리고, 그 불편함을 야기한 사건을 되새기면서, 그 사건에 대한 고통스러운 기억을 쉽게 망각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하에서, 주어진 삶을 힘겹게 가누어나가는 한 인간의 애잔한 안간힘을 그려내고 있다. 죽을 먹을 수밖에 없지만, 언제나 ‘부드럽게’라는 말이 가시처럼 목에 걸리는 삶은 참담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다. ‘죽’은 ‘죽이고 죽이’는 비극적인 사태를 떠올리는 매개체이면서 언제나 목 메이게 하는 것으로 가장 절실한 삶의 영양소이다. 음식을 통해 쓰디쓴 역사의 맛을 되새기는 절실함이 가슴을 울리게 하는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심사평 중에서)
5전시실 ‘흐르는 섬’은 4·3 후유증과 진상규명운동에 대해 정리하였다.
6전시실 ‘평화의 섬’ 좌우 벽면과 천장에 4·3 희생자들의 사진이 결려 있어 4·3의 기억을 평화와 인권의 소중함으로 다시 생각하는 공간이다.
특별 전시실 ‘다랑쉬굴’은 1948년 민간인이 토벌대에 의해 질식사한 동굴을 발굴 당시 그대로 재현하였다. 긴박했던 피난생활과 학살의 현장감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관점은 여행을 떠나야 비로소 변화한다. 길이 아주 갑자기, 전혀 예상치 못하게, 변명의 여지도 없이 아주 단호하게 방향을 틀거나 급경사로 바뀔 때, 비로소 우리는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었던 그 모든 것들을 보게 된다.”
– <산 위에 가서 말하라>, 제임스 볼드윈

박상봉 사회부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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