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장소 ⑪] 그 여자 돌 속에 들어가 꽃이 되었네

박상봉 사회부장 기자

등록 2026-03-26 09:08

돌을 수집하는 사람은 나무나 풀처럼

돌에도 생명이 있다고 믿는다

물고기를 냇가에 방생(放生)해 주듯

돌은 캐었던 자리에 갖다놓는 것이 원칙이다

상주시 낙동문학관 앞에서 왼쪽부터 필자 박소연 심영덕 이하석 박찬선 박우현 신영곤 윤창도 시인밀양


박상봉


햇빛 좋은 날

영남루에서 한 여자를 만났네


푸른 잎사귀 서늘한 그늘에

오래된 흙으로 이마를 덮고

그 여자 돌 속에 들어가 꽃이 되었네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꾸부정한 등

햇빛이 부끄러워 고개 숙인 채

누각(樓閣)에 기대어 흐르는 강물 바라보는 동안


살아온 세월이 밑바닥 드러내고

대숲을 흔들며 기차가 지나가네


웃자란 슬픔 밑동 자르고

겨우 올려다보는 하늘

눈물의 깊은 속뜻을 알 것 같은데


슬픔의 뒤쪽 풍경을 가만 들추니

꽃숭어리 피어난 돌 속에서

잠든 여자의 얼굴,


비와 바람 흐르는 물에 씻긴

투명한 주름살도 보이네


어제 퇴강에서 주운 돌. 이하석 시인은 오른 쪽 돌을 장원석으로 손꼽았다.

돌밭에 안 간 지 꽤나 오래되었는데 어제 다시 돌밭을 찾게 되었다. 상주시 사벌면 퇴강리 소재 조암산 자락 낙동강 변 옛 퇴강(물미) 주변을 서성였다. 이하석 시인과 함께하는 구름시회 춘삼월 회동이다. 


예전에는 나도 수석에 빠져 이하석 선배를 쫄쫄 따라다니며 강이나 산에 가서 눈길 끄는 돌을 찾는데 하루를 꼬박 바친 날들이 많았다.

 

다양한 모양의 돌들을 줍거나 안아다가 방안에 차려놓고 감상하는 마음은 돌의 무늬와 형상만큼이나 아름답고 멋스럽다.

          

그러나 따가운 햇살을 받으며 종일 돌밭을 뒤지고 다녀도 마음에 드는 돌 하나 발견해 내기란 쉽지 않다. 물 속에 가라앉은 돌 하나가 그럴듯하다 싶어 첨벙 발을 담그고 들어가 건져보면 물 속에서 보았던 아름다운 빛깔은 간 곳이 없고 그저 평범한 돌덩이가 햇빛에 바래지고 있을 따름이다.

           

일생일석(一生一石)이라고 했는데 벌써부터 좋은 돌을 기대하는 것은 턱없이 과욕을 부리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아쉬움을 달래며 돌아오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석(採石)하는 과정은 언제나 신선하고 착실한 재미를 느끼게 한다.

            

돌밭 가운데 쪼그리고 앉아 가만히 들여다보면 돌에도 얼굴이 있다. 눈과 입과 귀가 있고 모진 바람과 싸워 이겨온 이마의 주름살도 보인다. 비와 바람, 흐르는 물에 씻겨 내려진 갖가지 돌의 형태는 우리들의 삶과도 아주 닮아있고 돌의 침묵은 어쩌면 한편의 시와도 닮아 있다.

           

돌을 수집하는 사람은 나무나 풀처럼 돌에도 생명이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아예 자신이 없는 돌은 가져가지 않는다. 간혹 캐낸 돌을 옮겨가다가 도중에 마음에 들지 않아 버리고 싶더라도 아무데나 함부로 버리지 않는다.


돌 하나가 지닌 자연의 멋과 바람의 숨결에 대해 설명하는 이하석 시인.

최인호의 소설 「돌의 초상」을 보면 ‘마치 초파일날 물고기를 사서 냇가에 방생(放生)해 주는 듯 돌은 캐었던 자리에 갖다놓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하고 있다.

             

돌 하나가 지닌 자연의 멋과 바람의 숨결에 닦이면서 만들어진 돌의 갖가지 형태미를 완전하게 음미해내려면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그 법칙을 배우고 따르는 자세를 먼저 갖춰야 한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는 대목이다.


졸시 「밀양」 은 이성복 시인의 대표시 「남해금산」과 비슷한 이미지가 느껴진다고 해서 발표를 안하고 있다가 제34회 대구시인협회상 수상한 세 번째 시집 『물속에 두고 온 귀』(모악)에 수록한 바 있다.

 

박상봉

1958년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나고 청도와 대구에서 자랐다. 1981년 박기영 안도현 장정일 등과 시동인지 『국시國詩』를 통해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시집으로 『카페 물땡땡』 『불탄 나무의 속삭임』『물속에 두고 온 귀』 『불 꺼진 너의 단어 곁에서』 등이 있다.

박상봉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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