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의 가치와 도전

다수결은 민주사회를 지탱해 온 근본원리로, 안정 유지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모든 분야에서 다수 의견과 주류적 입장은 법적·사회적으로 견고한 보호를 받는다. 문제는 새로 대두하는 영역에서 전제 사실이 잘못됐거나 중요한 상황을 빠트린 채 형성된 다수 의견의 폐해다.
인공지능(AI), 블록체인 등 신기술과 그에 기반한 산업, 경제의 새로운 현상이 모든 국가를 휩쓸고 있다. 국가별 대응 전략에 따라 아직 검증되지 않은 소수의 도전이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가 크게 달라진다. 자동차를 최초로 만든 영국에서는 다수인 마차 소유자들의 입김으로 인해 차를 운전하려면 붉은 기를 든 기수를 앞세워야 한다는 적기법(Red Flag Act)을 시행한 반면, 독일에서는 자동차가 소수에 불과했지만 그런 제한을 두지 않았다. 뒤늦게 뛰어든 독일이 자동차 산업에서 영국에 앞서는 성과를 이룬 것은 물론이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가상자산과 AI 기술에 기반한 소수의 산업을 장려하는 정책으로 전격 전환한 점은 심상치 않다. 에너지 산업이나 월가에 비하면 작고 불안정한 신생 산업이지만, 여기서 미국이 주도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요소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조 바이든 정부의 증권거래위원회(SEC)는 디지털 자산의 발행과 유통이 증권법 체계에 위반한다는 이유로 거세게 대응했지만, 게리 겐슬러 SEC 위원장에게 공개적으로 반대 의견을 낸 헤스터 피어스 위원의 소수 입장은 존중됐으며 새 정부에서는 이 같은 의견이 다수로 역전될 듯하다.
2019년 메타의 리브라 프로젝트 청문회 때 미국 의회 의원 다수는 디지털 자산에 대해 부정적이었으며 디지털 자산에 투자하지 않는 국민이 80% 정도로 다수였지만, 디지털 자산 전반을 규제하는 연방법을 급히 만들지 않고 소수인 사업자들과 이용자들의 의견을 수렴했다.
특정 국회의원의 과도한 투자가 문제가 돼 주류의 여론이 안 좋아지자, 급히 이용자 보호와 사업자에 대한 규제만 추려 법을 만든 한국과는 비교된다. 사업자의 관점에서 요구한 라이선스 체계, 토큰 발행 시장의 정비는 고려 대상조차 되지 못했다.
영국에서 시작한 '규제샌드박스'는 혁신적 사업에 대해 일정 기간 규제를 면제·허용해 주는 것인데, 한국에서는 업력이 짧고 자본금과 매출이 적다는 바로 그 이유로 신생 기술 스타트업들에 오히려 너무 엄격한 절차와 조건을 부과하는 경향이 있다.
인간을 통제할 수 있는 일반 AI와 모든 자산의 토큰화 같은 흐름이 변화를 얼마나 가져올지는 누구도 단언하기 힘들다. 국가·기업이나 개인은 끝없이 노력하고 그 현상 속에 참여하지 않으면 잘못된 이해와 방향 설정을 할 수 있다. 우리가 주로 투기와 자금세탁의 수단으로 알고 있는 가상자산에 대해 다른 국가에서는 금융과 자산 생태계에 들이는 비용과 시간을 절약해 주고 더 안전한 거래 방법을 제공해 줄 수단으로 보는 경우도 늘고 있다.
폐쇄적 개발 방식의 AI인 '챗GPT'와 '제미나이'가 독주할 것으로 알았는데, 오픈소스 방식인 중국의 '딥시크'가 갑자기 나타나 심지어 더 앞서나갈 가능성이 있다고도 한다.
유행과 주류에 민감한 한국도 다수 의견이나 대세에 따르면 2등은 한다는 맹신에서 벗어나 디지털 대전환 시대에 남다르게 보고 실행하는 소수를 존중해야만 국가나 개인이 총체적 변화의 파고를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최용대 발행인/ 주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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