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보감, 어떤 책일까] 글 속에서 길을 묻는다

권오정 문화부장/ 기자

등록 2026-10-30 06:57


보화용지유진 인덕수지무궁

寶貨用之有盡 仁德修之無窮

보물과 재물은 쓰면 다함이 있으나, 

어진 덕은 닦아두면 끝이 없다.


혼란과 변화의 물결이 거세게 이는 현대 사회를 살아갈수록, 우리는 종종 길을 잃은 듯한 막막함에 사로잡히곤 한다. 


첨단 기술이 삶의 방식을 순식간에 바꾸어 놓고, 물질적인 풍요 속에서도 정신적 갈증은 오히려 깊어지는 시대. 이럴 때일 수록 우리 선조들이 수백 년, 수천 년 동안 지켜온 지혜의 원천을 돌아보게 된다. 


그중에서도 인간의 도리와 마음가짐을 투명하게 비춰주는 보석 같은 거울,고려 충렬왕 때의 문신이자 학자인 추적(秋適) 선생의 손에서 비롯되어 《명심보감(明心寶鑑)》 12편의 가치는 오늘날 더욱 새롭게 다가온다.


이후 명나라의 범립본 등에 의해 증보를 거치며 조선으로 건너온 이 책은, 서당 아동들의 필수 교재를 넘어 당대 지식인들과 민초들의 삶을 지탱하는 든든한 정신적 지주로 자리 잡았다. 


놀랍게도 16세기 말에는 스페인어로 번역되어 유럽에까지 소개되며 동서양을 잇는 최초의 지적 교류 중 하나로 기록되기도 했다.


이 책이 시대를 뛰어넘어 여전히 깊은 울림을 주는 이유는, 그 짜임새가 인간 삶의 본질을 정확히 관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명심보감》은 현란한 수사나 복잡한 이론 대신,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삶의 실천적 덕목들을 정교하게 배치하고 있다.



계선편 (繼善篇)

선을 행하면 복이 오고, 악을 행하면 화가 온다는 권선징악의 진리


천명편 (天命篇)

하늘의 뜻과 이치를 순리대로 따르며 살아가야 함을 강조


순명편 (順命篇)

운명과 분수를 알고 겸손하게 삶을 수용하는 자세


효행편 (孝行篇)

부모님께 효도하고 섬기는 것이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도리임을 설명


정기편 (正己篇)

자기 몸과 마음을 바르게 다스리는 법과 언행의 절제


안분편 (安分篇)

자신의 처지와 분수에 만족하며 탐욕을 경계함 (知足者 貧賤亦樂)


존심편 (存心篇)

마음을 보존하고 양심을 잃지 않도록 늘 경계하는 태도


계성편 (戒性篇)

분노와 성품을 모나지 않게 다스리고 참는 인내의 중요성


근학편 (勤學篇)

배움의 기쁨과 부지런히 학문에 힘써야 하는 이유


훈자편 (訓子篇)

자녀를 바르게 가르치고 교육하는 경륜과 도리


성심편 (省心篇)

마음을 반성하고 돌아보며, 인간관계와 처세의 지혜를 모은 핵심 단원


교우편 (交友篇)

진정한 친구를 사귀는 기준과 우정의 가치



우선 눈에 띄는 것은 ‘계선편(繼善篇)’과 ‘천명편(天命篇)’을 통해 흐르는 준엄한 인과응보와 순리의 철학이다. 선을 행하면 복이 온다는 진리는 단순한 도덕 교과서의 구호를 넘어, 각박한 세상에서 중심을 잡게 하는 단단한 닻이 된다. 또한 자신의 분수를 알고 만족할 줄 아는 안분지족의 지혜나, 분노를 가라앉히는 계성편의 가르침은 탐욕과 조급함에 쫓기는 현대인들에게 깊은 숨을 고르게 한다.


특히 부모를 돌아보아야 하고 오늘날의 리더십과도 정확히 효도를 강조한 ‘효행편’과 내 몸과 마음을 먼저 바르게 다스려야 한다는 ‘정기편(正己篇)’은 지도자나 수양하는 자가 가져야 할 근본적인 태도를 일깨운다. “자기를 바르게 한 뒤에 남을 가르친다(正己而後 敎人)”는 옛 성현의 가르침은, 타인을 향한 비판에 앞서 스스로를 맞닿아 있다. 


배움의 기쁨을 일깨우는 ‘근학편’, 좋은 인연의 가치를 전하는 ‘교우편’ 역시 인간관계의 본질이 무엇인지 묵직하게 묻는다.


우리는 흔히 발전이라는 이름 아래 새로운 것만을 좇지만, 인간이 품어야 할 품성과 고뇌의 본질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물질이 지배하는 세상일수록 우리의 마음은 더욱 어지러워지기 쉽상이다.


오늘 저녁, 《명심보감》의 책장을 펼쳐 선현들이 마음에 새겼던 한 줄의 문장을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그 투명한 거울 앞에 우리 자신을 비춰보는 것만으로도, 거친 세상을 헤쳐 나갈 맑고 단단한 마음의 지혜를 다시금 얻게 될 것이다.


권오정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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