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칼럼]영화는 역사를 어디까지 상상할 수 있는가-청암 배성근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등록 2026-10-03 09:39





영화 한 편이 역사에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그 질문은 다시 우리 사회를 향했다. 최근 실존 인물과 실제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싸고 역사적 사실과 영화적 상상력의 경계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한쪽에서는 예술의 자유와 창작자의 표현권을 강조하고, 다른 쪽에서는 실제 사건을 소재로 삼았다면 역사적 사실을 다루는 데 더욱 신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논쟁을 단순히 영화에 대한 찬반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보다 근본적인 질문은 창작의 자유는 어디까지 보장되어야 하며, 역사적 사건을 다루는 창작자는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는가에 있다.


예술은 자유로워야 한다. 영화가 기존의 역사 해석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도 가능하고, 공식 기록에 남지 않은 부분을 상상으로 구성할 수도 있다. 서로 다른 자료를 바탕으로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는 것 역시 창작의 영역이다. 이러한 자유가 없다면 예술은 기존 질서의 설명을 반복하는 데 머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실존 인물과 실제 역사적 사건을 작품의 중심에 놓는 순간에는 조금 다른 기준이 필요하다. 허구의 인물을 만들어내는 것과 실제 인물의 행동이나 발언을 새롭게 구성하는 것은 관객에게 전달되는 무게가 같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는 단순히 과거에 일어난 사건의 목록이 아니다. 한 사회가 무엇을 기억하고 어떻게 기억하는지를 결정하는 공동의 기억이기도 하다. 영화는 그 기억을 강하게 움직이는 매체다. 한 장면의 표정과 대사, 음악과 조명, 편집의 순서만으로도 관객은 사건 사이의 관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 영화 속에서 직접적으로 사실이라고 말하지 않더라도 장면과 장면이 이어지면서 관객의 머릿속에는 하나의 역사적 이미지가 만들어진다. 바로 이 지점에서 영화의 힘과 책임이 동시에 발생한다.


물론 영화는 역사책이 아니다. 모든 대사와 장면을 사료 그대로 재현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극적인 긴장과 서사를 위해 각색과 상상력이 필요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각색했느냐 하지 않았느냐가 아니라, 그 각색이 관객에게 무엇을 사실처럼 받아들이게 하느냐에 있다. 실제 기록에 근거한 부분과 창작자의 상상이 뒤섞여 관객이 이를 구별하기 어렵다면 영화는 단순한 오락물을 넘어 역사 인식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매체가 된다.


특히 역사적 사건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세대에게 영화의 영향력은 더욱 크다. 한 세대가 책을 통해 기억한 역사를 다음 세대는 영화의 한 장면으로 기억할 수도 있다. 책 속의 문장은 다시 찾아볼 수 있지만, 강렬한 영화 장면은 오랜 시간 기억 속에 남는다. 그래서 역사적 사건을 다루는 영화에는 일반적인 창작물과는 다른 정직성이 요구된다. 이것이 확인된 사실인지, 아니면 창작자가 제시한 하나의 가능성인지 관객이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창작자에게 모든 장면마다 각주를 달라는 것은 아니다. 영화의 상상력을 역사학 논문처럼 제한하자는 이야기도 아니다. 오히려 창작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서라도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가능한 한 정직하게 다룰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논쟁적인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삼았다면 제작자가 어떤 자료를 참고했고 어디까지를 창작적 해석으로 구성했는지 설명할 수도 있다. 작품을 둘러싼 논란이 생겼을 때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는 말로 논쟁을 닫기보다 어떤 부분이 기록에 근거하고 어떤 부분이 극적 구성인지 설명하는 태도 역시 필요하다.


관객의 책임도 있다. 영화 한 편을 보고 역사를 모두 알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역사적 사건에 대한 영화적 해석은 하나의 자료일 뿐이며, 그 자체가 최종적인 역사적 판정은 아니다. 영화가 질문을 던지면 관객은 다시 자료를 찾아보고 당시의 기록과 증언, 역사학자들의 연구를 비교할 필요가 있다. 영화가 역사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 그것이 영화가 사회에 줄 수 있는 긍정적인 역할일 것이다.


이번 논란을 정치적 진영의 대립으로만 바라보는 것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역사는 어느 정당의 소유도 아니며 어느 세대의 전유물도 아니다. 자신이 지지하는 인물을 위해 역사적 사실을 선택적으로 바라보는 것도 경계해야 하고, 반대로 비판하고 싶은 인물을 위해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를 사실처럼 받아들이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역사를 미화하기 위한 왜곡이든 역사를 비판하기 위한 왜곡이든 모두 기록과 검증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역사는 정치의 소유물이 아니라 공동체가 끊임없이 확인하고 성찰해야 할 기록이기 때문이다.


예술은 역사에 질문할 수 있다. 새로운 해석을 내놓을 수도 있고, 기존의 통념을 뒤흔드는 작품도 필요하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과 창작적 상상을 구별하는 최소한의 정직성까지 포기해서는 안 된다. 창작자는 자유롭게 질문할 수 있어야 하고 관객은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역사학자는 자료를 통해 반론할 수 있어야 하며 사회는 이 세 가지가 충돌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두어야 한다. 그것이 표현의 자유가 살아 있는 사회의 모습일 것이다.


다만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특히 실제 인물과 역사적 사건을 다루는 작품이라면 더욱 그렇다. 영화가 만들어낸 하나의 장면이 관객의 기억 속에서는 실제 역사처럼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창작자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내가 만든 장면은 관객에게 무엇을 생각하게 하는가. 그리고 내가 만든 허구가 훗날 누군가에게 역사적 사실로 기억될 가능성은 없는가.


이 질문을 던지는 것은 예술의 자유를 제한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예술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자기 성찰이다. 검열은 창작자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지만, 비판은 다르다. 예술은 자유롭게 만들어질 수 있지만, 그 작품이 사회에 던지는 의미 역시 자유롭게 비판받을 수 있어야 한다. 예술에는 표현할 자유가 있지만 비판받지 않을 특권은 없다.


「암살자들」을 둘러싼 논란 역시 이 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영화가 무엇을 주장했는지만 따질 것이 아니라 어떤 장면과 구성으로 관객에게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기억하게 했는지 살펴봐야 한다. 그리고 관객 역시 영화가 던진 질문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한 번 더 역사책을 펼쳐야 한다.


영화는 역사를 대신할 수 없다. 그러나 역사에 대한 질문을 다시 시작하게 할 수는 있다. 그 질문이 사실을 향한 탐구로 이어질 때 영화의 자유는 더욱 의미를 갖는다. 창작의 자유는 역사 앞에서 작아질 필요가 없다. 다만 그 자유가 만들어내는 기억의 무게까지 외면해서는 안 된다. 영화가 과거를 새롭게 상상할 수 있는 만큼, 그 상상이 사람들의 기억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까지 생각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 역사와 마주한 예술이 감당해야 할 가장 중요한 책임일 것이다.




시와늪 대표 배성근(시인.수필.소설.평론(비평).칼럼리스트)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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