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7천여채 파손·이재민 3만2천명…이번 주말 수색 종료 예정
기후 변화로 히말라야산맥 빙하 녹아…'기후 불평등' 문제도 제기
대홍수 휩쓴 네팔 누와코트 지역 [AFP=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자카르타=연합뉴스) 손현규 특파원 = 네팔과 중국 국경의 히말라야 산악지대에서 대규모 홍수가 발생한 지 한 달이 됐지만 실종자 수색과 피해 복구 작업은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네팔과 중국 티베트자치구에서 8천명 넘게 숨지거나 실종됐고, 네팔에서만 건물 7천여채가 파손되면서 3만2천명이 집을 잃었다.
네팔 정부는 더는 생존자를 찾을 가능성이 작은 것으로 보고 이번 주말께 수색 종료를 발표할 예정이다.
이번 대홍수는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 변화로 히말라야산맥의 빙하가 녹으면서 일어났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조사되면서 '기후 불평등' 문제도 제기됐다.
대홍수 덮친 네팔 [소셜미디어 엑스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 '시속 188㎞' 대홍수…하류마을서 혼비백산 대피
현지시간 지난달 26일 오전 8시 37분 네팔 중북부 바그마티주에 있는 랑탕리룽산(해발 7천234m)의 고도 5천150m 지점에서 2㎢ 규모의 빙하와 암석 덩어리가 갑자기 무너졌다. 2㎢는 축구장 280개를 합친 거대한 크기다.
이후 빙하와 암석이 1천400m 아래 렌데강으로 떨어지면서 엄청난 충격도 발생했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조차 처음에는 티베트에서 규모 4.4 지진이 발생했다고 잘못 발표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USGS는 곧이어 새로운 보고서를 통해 지진은 일어나지 않았다며 대규모 빙하와 암석이 무너지는 과정에서 규모 5.2 지진과 유사한 정도의 큰 충격이 발생했다고 정정했다.
네팔 수문·수자원연구센터는 무너진 빙하와 암석이 렌데강을 일시적으로 막아 강한 수압이 생겼고, 곧이어 몇 분 만에 이른바 '자연 댐'이 갑자기 무너지면서 대홍수가 일어난 것으로 추정했다.
강물에 빙하와 암석이 뒤섞인 토석류(土石流)는 시속 188km의 매우 빠른 속도여서 티베트 국경까지 도달하는 데 불과 7분밖에 걸리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렌데강에서 만들어진 거대한 토석류는 보테코시강을 거쳐 트리슐리강까지 70㎞가량 하류 지역으로 계속 쏟아졌고, 강변 마을들마저 모조리 집어삼켰다. 주민들은 집 밖으로 뛰쳐나와 혼비백산하며 대피했으나 대규모 인명피해는 피할 수 없었다.
'대홍수' 네팔 바그마티주 누와코트서 구조된 생존자 [AP=연합뉴스. 재판매 및 DB 금지]
◇ 한국인 9명 여전히 실종…네팔 피해·손실액 3조6천억원
네팔 국가재난위험경감·관리청은 지난 16일 기준으로 자국에서만 1천403명이 숨지고 6천150명이 실종됐다고 밝혔다.
네팔 국경 인근에 있는 중국 티베트에서 이번 대홍수와 연관된 토석류 사태로 숨진 43명과 실종된 519명을 더하면 양국 전체 사망자 수는 1천446명, 실종자 수는 6천669명이다. 양국 사망자와 실종자를 모두 합하면 총 8천115명이다.
네팔 어퍼트리슐리(UT)-1 수력발전소를 건설하던 두산에너빌리티 직원 6명과 한국남동발전 직원 3명 등 한국인 9명도 여전히 실종된 상태다.
한국 정부는 실종된 이들 9명을 찾기 위해 사고 하루 만인 지난달 27일 합동 신속대응팀을 파견한 데 이어 지난 2일에는 소방청 구조대원 등 44명으로 꾸린 해외긴급구호대(KDRT)까지 투입했다.
구조대원들은 네팔군의 협조를 받아 헬기와 드론을 이용한 수색뿐만 아니라 도보 수색도 시도했으나 끝내 한국인 실종자들을 찾지는 못했다.
네팔 정부는 이번 대홍수로 인한 직접적인 물적 피해액이 2천744억8천만 네팔루피(약 2조4천100억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경제적 손실액 1천338억1천만 네팔루피(약 1조1천700억원)를 합하면 전체 피해·손실액은 4천82억9천만 네팔루피(약 3조6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네팔 국가재난위험경감·관리청은 건물 7천570동이 완전히 파손되거나 일부 파손됐다며 직접 피해를 본 인원은 3만2천933명이라고 밝혔다.
향후 재건 비용으로는 7천233억1천만 네팔루피(약 6조3천억원)가 필요할 것으로 추산됐다.
네팔 경찰 병원서 DNA 채취 기다리는 실종자 가족들 [AFP=연합뉴스. 재판매 및 DB 금지]
◇ 사망자 신원 확인 난항…재건 비용 훨씬 늘어날 듯
지금까지 네팔에서 수습된 사망자 시신 1천400여구 가운데 신원이 확인된 경우는 100여구에 불과하다.
이는 급류에 휩쓸리면서 훼손되거나 오랫동안 물속에 잠겨있다가 발견된 시신이 많아 유전자 정보(DNA)를 확인하기가 쉽지 않은 데다 DNA 검사를 할 수 있는 전문가와 기술력도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현재 네팔에서 DNA 검사를 할 수 있는 곳은 경찰 중앙법의학연구소와 과학기술혁신부 산하 국립 법과학연구소 등 2곳뿐이다. 평소 두 기관에서 연간 1천건 미만의 시료를 처리하지만, 이번 대홍수 이후에는 2천600건 넘게 밀려들었다.
네팔 정부는 이번 주말께 수색 작업 종료를 발표하고 본격적인 복구 단계로 넘어갈 계획이다.
다르마 라지 우프레티 국가재난위험경감·관리청장은 "(앞으로) 생존자를 발견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거나 아예 없다"며 그동안 집중한 수력발전소 터널 내부 수색도 끝내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네팔 정부는 생계비와 임차료 지원 명목으로 4인 가족 기준 월 1만5천 네팔루피(약 13만4천원)를 지원하고, 또 가구마다 주택 지원금으로 40만 네팔루피(약 356만원)을 추가로 지급하기로 했다.
우프레티 청장은 향후 실제 재건 비용이 초기 추산치인 7천233억1천만 네팔루피(약 6조3천억원)보다 훨씬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 7천233억1천만 네팔루피는 신속 평가를 바탕으로 한 초기 추산치"라며 "현재 위험 구역으로 지정된 사유지를 국유화함에 따라 홍수 피해를 본 이재민들에게 정부가 지급해야 할 보상 비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히말라야산맥 빙하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 무서운 기후 변화…대홍수 전 히말라야 평균 기온 5도 높아
기상 전문가들은 기후 변화로 히말라야산맥의 빙하가 녹으면서 이번 네팔 대홍수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입을 모았다.
극단적 기상을 연구하는 프로젝트인 '세계 기상 원인규명'(WWA) 연구팀은 히말라야 전역에서 기온이 상승하면서 빙하뿐만 갈라진 암석을 서로 묶는 역할을 하는 영구동토층도 녹았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히말라야 지역의 평균 기온은 평년보다 5도가량 높았으며 이 가운데 1.5도는 기후 변화로 인한 것이라고 WWA 연구팀은 밝혔다.
아시아 인구 20억명가량의 주요 물 공급원인 히말라야산맥은 온난화로 빙하가 녹아 없어지는 속도가 21세기 들어 2배 이상 더 빨라졌다.
이 지역의 빙하 두께는 2000년 이전에는 연평균 34㎝씩 줄었으나 2000년 이후부터는 연간 73㎝로 2배 이상 빨리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영국 대학교인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소속 기후학자인 프리데리케 오토는 "영구동토층이 녹고 빙하가 얇아지고 눈 대신 비가 더 많이 내리는 현상 등 인간이 초래한 기후 변화가 이번 재해 발생에 영향을 준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네팔 대홍수는 재난을 일으키는 데 기여한 가해국과 재난을 고스란히 입은 피해국이 다른 기후 불평등의 현실도 드러냈다.
시시르 카날 네팔 외교부 장관은 "네팔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사실상 미미한데도 우리가 초래하지 않은 지구적 위기의 궁극적인 대가를 우리가 치르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국제기구인 글로벌 탄소 프로젝트(GCP)에 따르면 2024년 네팔의 연간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전 세계의 0.05%에 그쳤다. 반면 중국은 세계 배출량의 30% 이상을, 미국도 10% 이상을 차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