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정전은 권력의 상징이 아니라 생명을 품은 공간
드므에 비친 궁궐과 정호승의 시가 만나는 순간,
경복궁은 더 이상 과거의 왕궁이 아니라 사람과 자연,
역사와 희망이 함께 숨 쉬는 풍경이다
광화문에서
정호승
서울 광화문에
소를 몰고 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소가 경복궁 근정전 앞마당을
가래질한다면
나는 그 뒤를 신발 벗고 따라가
그 사람의 소가 될 것이다
하룻밤 사이에
송아지도 낳을 것이다
송아지의 잔등을 씻고 지나가는
봄비도 될 것이다
서울 광화문에 워낭소리 울리며
느릿느릿 황소 한 마리 몰고 가는
그런 사람 있다면
경복궁 근정전 앞에 놓인 불을 막는다는 뜻을 지닌 커다란 청동 항아리 드므
정호승의 시 「광화문에서」를 읽으면 문득 경복궁 근정전 앞에 놓인 불을 막는다는 뜻을 지닌 커다란 청동 항아리, 드므가 떠오른다.
광화문으로 소를 몰고 가는 사람, 그리고 그 뒤를 따라가 기꺼이 소가 되겠다는 시인의 마음은 경복궁을 향해 천천히 걸어 들어간다. 그 발걸음은 어느새 근정전 앞 드므에 이르러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고, 물속에 비친 근정전은 권력의 상징이 아니라 생명을 품은 공간으로 다시 태어난다. 드므에 비친 궁궐과 정호승의 시가 만나는 순간, 경복궁은 더 이상 과거의 왕궁이 아니라 사람과 자연, 역사와 희망이 함께 숨 쉬는 오늘의 풍경이 된다.
경복궁 근정전
광화문을 지나 경복궁 안으로 들어서면 사람의 눈은 대개 위를 향한다. 단청의 빛깔과 추녀의 곡선, 겹겹이 이어진 지붕을 바라보느라 발아래 놓인 것들은 좀처럼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나 궁궐은 높은 곳에만 역사를 매달아둔 장소가 아니다. 돌계단의 모서리와 배수로, 문지방과 기둥 아래에도 오래된 생각이 숨어 있다.
근정전 월대 곁에 놓인 둥근 무쇠통도 그렇다. 멀리서 보면 커다란 가마솥처럼 보이지만 뚜껑도 손잡이도 없다. 음식을 끓이는 솥이 아니라 물을 담아두는 그릇, 드므다.
목재로 지어진 궁궐에서 불은 늘 가까운 재앙이었다. 겨울이면 온돌과 화로에 불을 들였고 밤이면 등불을 밝혔다. 작은 불씨 하나가 바람을 만나면 서까래와 기둥, 문살과 창호지를 단숨에 삼킬 수 있었다. 궁궐을 지키는 일은 곧 불을 경계하는 일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전각 가까이에 물을 두었다. 불이 오기 전에 물이 먼저 기다리도록 한 것이다. 화재가 나면 물은 불을 끄는 도구가 되었고, 평소에는 재앙을 막아주는 상징이 되었다.
드므에는 주술적인 믿음도 담겨 있었다. 불을 일으키는 귀신이 궁궐에 들어왔다가 물에 비친 제 흉측한 얼굴을 보고 놀라 달아난다는 이야기다. 오늘의 눈으로는 미신처럼 보이지만, 그 믿음에는 불을 두려워했던 사람들의 간절함이 배어 있다. 불을 막을 수 있다면 물뿐 아니라 물에 비친 그림자까지도 궁궐의 수호자로 삼고 싶었을 것이다.
경복궁 곳곳에는 그런 마음이 새겨져 있다. 광화문 앞의 해치는 잡된 기운을 물리고, 영제교 부근의 석수는 물길을 지킨다. 근정전 월대에는 사방을 지키는 동물들이 자리 잡고 있으며, 경회루 연못에는 불을 다스린다는 용의 형상이 잠겨 있다.
돌과 쇠와 물에 보이지 않는 경계를 세운 셈이다. 궁궐의 담장은 사람만 막은 것이 아니다. 불과 재앙, 불순한 마음과 이름 붙이기 어려운 두려움까지 막으려 했다.
근정전 월대 곁에 놓인 둥근 무쇠통이 드므다. 돌계단의 모서리와 기둥 아래 사방을 지키는 동물들이 자리 잡고 있다.
드므 앞에 오래 서 있으면 그릇보다 그 안의 빈자리가 먼저 보인다. 비가 온 뒤에는 얕은 물이 고이고, 작은 수면 위로 지붕 끝과 구름 한 조각이 흔들린다.
궁궐은 크고 드므는 작지만 물속에서는 근정전의 처마도 잎사귀 하나보다 작아지고, 지나가는 사람의 얼굴도 잠깐 나타났다가 바람이 스치면 금세 흩어진다. 왕이 머물던 자리와 이름 없는 관람객의 얼굴이 같은 물 위에서 만난다.
오래전에도 그랬을 것이다. 근정전 앞을 오가던 관리의 갓과 관복, 물을 채우던 궁인의 손, 야간 순찰을 돌던 사람의 등불이 드무 위에 잠시씩 머물렀을 것이다. 물은 수많은 얼굴을 받아들였지만 어느 하나 붙잡지 않았다.
드므는 기록하는 그릇이면서 지워버리는 그릇이다. 얼굴을 비추지만 간직하지 않고, 하늘을 담지만 붙들지 않는다. 물결이 일면 모든 모습은 조각나고, 물이 잦아들면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다시 하나가 된다.
시도 어쩌면 드므와 닮았다. 한 시대의 불안과 한 사람의 얼굴을 잠시 담아두지만 그것을 온전히 보존하지는 않는다. 기억은 물속에서 굴절되고, 실제보다 더 어둡거나 더 환한 모습으로 떠오른다. 시인은 그 흔들리는 형상을 오래 바라보다가 언어로 옮긴다.
드므의 물은 불을 지우기 위해 존재하지만, 역설적으로 불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기억하게 한다. 아무 일 없는 평온한 날에도 물은 자신이 왜 그 자리에 놓였는지 잊지 않는다. 고요함 속에 재앙의 기억을 품고 있는 것이다.
오래된 집의 마당에도 물을 받아두던 항아리나 큰 고무대야가 하나쯤 있었다. 수도가 자주 끊기던 시절, 물을 모아두는 일은 생활의 일부였다. 그 물 위에는 처마와 감나무와 지나가는 구름이 거꾸로 떠 있었다. 아이들은 손으로 물을 휘저으며 하늘을 깨뜨렸다가 다시 붙이곤 했다.
우리는 재앙을 완전히 없애지 못한다. 다만 재앙 곁에 그것을 막아낼 것을 준비해둔다.궁궐의 드므도 처음에는 그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는 물을 길어 채웠고, 누군가는 수면의 높이를 살폈을 것이다. 추운 날이면 물이 얼지 않도록 불을 피웠다는 기록도 있다. 불을 막으려는 물 곁에 다시 불씨를 두어야 했다는 사실은 삶의 아이러니를 닮았다. 불 옆에 물을 놓고, 두려움 옆에 믿음을 놓으며, 상실 옆에 기억을 놓는다. 그것이 사람이 살아온 오래된 방식이다.
경복궁은 여러 차례 불타고 무너지고 뜯겨나갔다. 전쟁과 외세, 권력의 부침 속에서 수많은 전각이 사라졌다가 다시 세워졌다. 궁궐의 역사는 견고함의 역사라기보다 무너진 자리에 다시 기둥을 세우는 시간에 가깝다. 역사를 알고 나면 드므는 단순한 소방용 물통으로 보이지 않는다. 타버릴 것을 알면서도 물을 채워두었던 사람들의 마음, 무너질 가능성 속에서도 집을 지키려 했던 의지가 둥근 무쇠의 몸 안에 남아 있는 듯하다.
나는 드므 곁에 서서 텅 빈 속을 오래 들여다본다. 물은 없지만 둥근 바닥에 하늘빛이 얕게 고여 있다. 근정전 처마 끝이 희미하게 흔들리고, 그 곁으로 내 얼굴 하나가 잠시 떠오른다. 바람이 지나가자 얼굴은 먼저 무너지고 하늘은 여러 조각으로 흩어진다. 오래전 이곳을 지나간 사람들의 표정도 저렇게 한 번 흔들린 뒤 사라졌을 것이다.
드므는 불을 끄기 위해 놓인 그릇이지만, 사라진 것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불길과 구름, 왕조와 한 사람의 얼굴을 한꺼번에 담았다가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물의 자리다. 드므를 떠나 몇 걸음 걷다가 다시 돌아보면 그릇 속에 하늘 한 조각이 아직 남아 있다. 오래전에 꺼진 불과 아직 식지 않은 기억이 그 얕은 빛 속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박상봉 사회부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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