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사 산책 7] 경절사(擎節祠), 충절을 기리는 기억의 사당 -청암 배성근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등록 2026-07-16 21:39

경절사


경절사(擎節祠)는 단순한 사당이 아니라, 한 인물의 삶을 통해 ‘충절’이라는 가치를 기리고 기억하는 역사적 공간이다. 진주성 안에 위치한 이 사당은 고려시대 문신이자 외교적 역할을 수행했던 하공진 장군의 위패와 영정을 모시고 제향을 올리는 곳이다. 즉, 경절사는 과거의 인물을 현재의 의식 속에 불러오는 ‘기억의 제의 공간’이라 할 수 있다.


하공진 장군


하공진 장군은 1010년(고려 현종 1년) 거란의 대규모 침입이라는 국가적 위기 속에서 외교적 역할을 맡아 활약한 인물로 전해진다. 당시 거란 성종이 4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압박하던 상황에서, 그는 협상과 설득을 통해 전쟁의 확산을 막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된다. 전쟁과 외교가 교차하던 혼란의 시대 속에서 그의 존재는 단순한 관리가 아니라, 국가의 생존을 떠받치는 한 축이었다.


그러나 그의 삶은 영광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외교적 임무 이후 그는 거란에 의해 볼모로 잡혀가 회유와 압박을 받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까지 “고려의 신하”라는 정체성을 저버리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이 발언은 단순한 충성의 표현을 넘어, 개인의 생존보다 국가와의 관계를 우선시한 정신적 결단으로 읽힌다. 그의 죽음에 관한 기록은 매우 비극적으로 전해지며, 역사적 사실과 전승이 함께 얽혀 있다.


충의당


중요한 것은 죽음의 방식 자체보다, 그가 어떤 인물로 기억되었는가이다. 고려 왕실은 그의 공과 충절을 인정하여 사후에 추증을 내리고 예우를 했으며, 이후 그의 정신은 지역의 역사 의식 속에서도 이어지게 된다. 이러한 기억의 축적은 진주라는 공간을 단순한 지역이 아니라 ‘충절의 상징적 장소’로 확장시킨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경절사는 하공진 개인의 사당을 넘어, 시대가 요구했던 가치—충(忠)과 절(節)—을 상징하는 문화적 장치로 기능한다. 오늘날 진주성 일대의 여러 역사 유적들과 함께, 경절사는 전쟁과 혼란 속에서도 지켜낸 인간의 선택과 신념을 되묻는 공간으로 남아 있다.

결국 경절사는 과거를 박제된 역사로 두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현재로 불러와 질문하게 한다.


국가와 개인이 충돌하는 순간, 인간은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 그 질문이 사라지지 않는 한, 경절사는 단순한 사당이 아니라 살아 있는 역사적 사유의 장소로 존재하게 된다.




시와 늪 대표 배성근(시인, 수필, 소설, 평론(비평). 칼럼리스트)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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