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분투칼럼] 아프리카 알고보면(17) 지도 위 아프리카와 도로 위 아프리카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등록 2026-06-11 07:16

이은별 한동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부 조교수


이은별 교수이은별 교수 [이은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편집자 주 = 연합뉴스 글로벌문화교류단이 국내 주요대학 아프리카 연구기관 등과 손잡고 '우분투 칼럼'을 게재합니다. 우분투 칼럼에는 인류 고향이자 '기회의 땅'인 아프리카를 오랜 기간 연구해온 여러 교수와 전문가가 참여합니다. 아프리카를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분석하는 우분투 칼럼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우분투는 '당신이 있어 내가 있다'는 뜻의 아프리카 반투어로, 공동체 정신과 인간애를 나타냅니다.]


아프리카 짐바브웨 지도아프리카 짐바브웨 지도 [제작 양진규]


짐바브웨 하라레에 머물던 시절, 남아프리카의 내륙국이라 고립돼 있다는 통념을 뒤집어 육로로 국경을 넘는 색다른 경험을 해보기로 결심한 적이 있다. 고민 끝에 고른 목적지는 모잠비크의 빌란쿨로스(Vilanculos)였다. 모잠비크는 국토의 길이가 남북으로 약 2천500㎞, 해안선이 약 2천470㎞에 이른다. 아프리카 동남쪽 해안을 따라 길게 뻗은 나라다. 그중 빌란쿨로스는 대표적인 신혼여행지인 인도양의 섬나라 모리셔스와 세이셸, 탄자니아 잔지바르섬에 비해 덜 알려졌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국경 도시로 향하는 대형 버스국경 도시로 향하는 대형 버스 [이은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더군다나 육로로 국경을 넘을 수 있다니, 장거리 자동차여행에 마음이 설렐 수밖에 없었다. 지도상으로 두 도시 간 거리는 약 830㎞지만, 출입국 절차와 도로 사정을 고려하면 여유 있게 움직이는 편이 나았다. 하라레의 새벽 공기를 가르며 서너 시간 남동쪽으로 내달리면 모잠비크로 통하는 국경 관문 도시 무타레(Mutare)에 이른다. 이어 포브스-마치판다(Forbes-Machipanda) 검문소를 통과하면 비슷한 듯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짐바브웨에서 쓰던 미국 달러는 모잠비크 메티칼(Metical)로 환전해야 하고, 귓가에는 익숙한 영어 대신 다소 낯선 포르투갈어가 들려온다. 드디어 모잠비크였다. 최종 목적지인 빌란쿨로스까지는 긴 여정이라, 마치판다 국경에서 100㎞ 정도 달려 첫 도시 시모이오(Chimoio)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짐바브웨 하라레에서 모잠비크 빌란쿨로스 이동 경로짐바브웨 하라레에서 모잠비크 빌란쿨로스 이동 경로 [이은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시모이오에서 빌란쿨로스로 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N1(Estrada Nacional 1, 1번 국도)은 수도 마푸토(Maputo)와 북쪽 해안 도시인 펨바(Pemba)를 잇는 장장 2천600㎞에 달하는 도로다. 전 국토의 남북을 연결하는 대동맥이지만, 운전자에게는 인내심을 시험하는 길이기도 하다. 전체 구간 중 1천㎞ 이상이 재정비가 필요한 상태다. 현재 도로 유지·보수는 세계은행과 아프리카개발은행(AfDB)의 자금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모잠비크 전체 도로망의 73%가 비포장 상태다. 항구를 통해 내륙국인 말라위와 짐바브웨로 물류망을 넓힐 수 있는데도 노후한 도로 인프라는 제자리걸음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운전자들은 N1을 가장 악명 높은 길(Notorious1)이라 부른다. 실제로 종잡을 수 없는 N1을 달리다 보면, 상상을 초월하는 도로 곳곳의 포트홀을 피하려 핸들을 부여잡고 온 신경을 제동에 쏟아야 한다. 그러고는 항구를 낀 모잠비크의 삶을 대변하듯 쉼 없이 오가는 대형 물류 트럭과 크고 작은 차량의 꽁무니를 조심스레 뒤따른다.


모잠비크 N1(1번 국도) 포장도로가 심각한 파임으로 비포장도로 변했다.모잠비크 N1(1번 국도) 포장도로가 심각한 파임으로 비포장도로 변했다. [이은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고된 운전을 한 두 시간씩 이어 나갈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 덕분이었다. 낯선 번호판을 단 이방인이 나타나도 마을 사람들은 언어의 벽을 넘어 우리를 환대해 줬다. 가판에 늘어놓은 물건을 손짓, 발짓으로 알려주려 했고, 단단한 모랫바닥의 천연 화장실까지 깨끗이 비질해 내어줬다. 경계심이라곤 없는 그들의 모습에 장거리 운전의 피로는 사라졌다.


무엇보다 우리를 멈춰 세운 것은 산지 직판 파인애플과 캐슈너트였다. 마을 어귀의 밭에서 막 베어온 파인애플은 잘린 자리가 새하얗고, 갓 수확해 집에서 볶아온 캐슈너트는 그 빛깔이 제각각이었다. 난생처음 보는 광경이었고, 잊을 수 없는 달콤함과 고소함이었다. 통행량이 많지 않은 험한 마을 길에 차가 들어서면, 양쪽 길가 수풀에서 광주리를 든 사람들이 우르르 뛰어나왔다. 잠시 정차해 창문을 내리면, 저마다 자기 파인애플과 캐슈너트가 가장 신선하다며 차 안으로 들이미는 통에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경쟁이 벌어졌다. 이제는 베트남에 그 자리를 내어주었지만, 한때 세계 1위 캐슈너트 생산·수출국이었던 모잠비크의 명성을 새삼 떠올릴 수 있었다.


모잠비크 캐슈너트와 파인애플을 파는 도로변 상인들모잠비크 캐슈너트와 파인애플을 파는 도로변 상인들 [이은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러한 국운의 파고에는 남북으로 길게 뻗은 모잠비크의 지리적 편차가 크게 작용했다. 평온한 남쪽 해변과 달리, 북부 카보 델가도(Cabo Delgado)주는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로 인명·경제 피해가 끊이지 않고 있다. 수도가 위치한 남쪽과 북쪽의 처지가 이토록 다르니, 가히 한 나라 안의 두 얼굴이라 할 만하다. 한편에서는 아프리카대륙자유무역지대(AfCFTA)가 아프리카를 하나의 시장으로 묶어 대륙 경제에 새로운 미래를 열어줄 것이라는 기대가 높다. 하지만 모잠비크의 N1 위에서 마주한 현실은, 거대한 물류망으로 '연결된 아프리카'가 아직은 상상 속 이미지에 가까운 것은 아닌지 되묻게 했다. 항구 도시를 낀 모잠비크조차 남북을 잇는 변변한 도로를 갖추지 못한 채 북쪽의 불안은 깊어만 가니, 선언보다 현실에 더 많은 고민과 논의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언어적, 지리적으로 멀게 느껴지는 모잠비크는 사실 한국과 여러 방면으로 이어져 있다. 2021년 11월, 문재인 정부 시절 가스전 생산·저장·하역 설비(FLNG) 명명식에 참석하기 위해 모잠비크의 필리프 뉴지 대통령 내외가 방한했다. 먼바다 가스전 위에 떠서 천연가스를 액화·저장하는 FLNG선이 한국에서 건조된 것을 계기로 한-모잠비크 정상외교가 성사된 것이다. 이를 통해 포르투갈어권 아프리카와 한국의 관계가 넓어졌다. 한국의 에너지 확보는 물론 인도양 전략까지 재구성하며 아프리카 외교 다변화의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 과정에서 한국가스공사가 10% 지분으로 참여해, 부침을 겪는 모잠비크의 경제 성장에 모범적인 협력 파트너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


리본 자르는 한-모잠비크 대통령리본 자르는 한-모잠비크 대통령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2021년 11월 15일 문재인 전 대통령 내외와 필리프 뉴지 모잠비크 전 대통령 내외가 경남 거제시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열린 한-모잠비크 부유식 해양 LNG 액화 플랜트(FLNG)선출항 명명식에서 리본을 자르고 있다. 코랄 술(Coral-Sul)로 명명된 FLNG는 길이 432m, 폭 66m, 높이 39m의 크기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이다. jeong@yna.co.kr


빌란쿨로스에서 하라레로 돌아오는 길, N1 위에서 필자는 다시 생각했다. 아프리카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지도를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상상하던 그 아프리카를 길 위에서 직접 부대껴 보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아프리카 알고보면, 한국과 모잠비크를 잇는 협력의 미래 역시 지도 위의 외교가 아니라 도로와 항만, 그리고 그 길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연결하는 데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모잠비크 빌란쿨로스 해변모잠비크 빌란쿨로스 해변 인도양에서 갓 잡은 물고기를 거래하는 이들과 낯선 이방인의 사진을 찍어주며 즐거워하는 청년들 [이은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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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별 교수


현 한동대 커뮤니케이션학부 조교수, 성균관대 컬처앤테크놀로지융합전공 초빙교수, 한국외대 미디어외교센터 전임 연구원 역임. 에세이 '경계 밖의 아프리카 바라보기, 이제는 마주보기' 외교부 장관상 수상, 저서 '시네 아프리카' 세종도서 선정 및 희관언론상 수상.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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