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아·이민자들의 뿌리 찾기…계속되는 'K-디아스포라' 소설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등록 2026-06-11 07:14

거짓 입양신화 겨냥한 '민 킴'…입양인 정체성 문제 다룬 '나의 통역사'


한국설화 재해석 '우리, 메아리처럼'·'그리고 강은 그녀를 끌어내린다'


한국계 덴마크 작가 에바 틴드한국계 덴마크 작가 에바 틴드 [ⓒ Natascha Rydval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그렇게 우리는 태어났다. 따뜻하고 큰 살덩어리 안에서 밀려 나온 따뜻하고 작은 살덩어리가 아니라 금속 몸체의 옆구리에서 태어난 거였다."


한국계 덴마크인 소설가인 에바 틴드(52)의 소설 '민 킴'(산지니 펴냄)의 주인공인 에바는 생후 13개월 무렵 처음 덴마크 땅에 도착했던 순간을 이렇게 말한다.


에바의 본명은 '김남숙'. 낯선 백인 가족의 품에 안긴 그는 한국에서 덴마크로 보내진 입양아였다.


민 킴민 킴 [산지니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에바 틴드·리 랑그바드…한국계 덴마크 작가들 소설 잇따라 번역 출간


'코리안 디아스포라'를 다룬 한국계 외국 작가들의 소설이 잇따라 번역 출간되고 있다.


디아스포라는 본래 '흩뿌리다'는 뜻의 고대 그리스어에서 나온 말로, 주로 고향을 떠나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을 일컫는 말이다. 이제는 넓은 의미에서 기존에 살던 곳을 떠나 다른 지역에 정착하게 된 이들이나 이주 그 자체를 두루 지칭한다.


한국은 세계 최대 규모의 국외 입양 디아스포라를 형성한 국가로, 한국전쟁 이후 약 70년간 20만명이 서구권으로 입양된 것으로 추산된다.


에바 틴드 역시 1974년 부산에서 태어나 덴마크로 입양됐으며, 그의 신작 '민 킴'은 작가의 자전적 체험을 담아낸 작품이다.


소설은 1975년 한 비행기에 실려 덴마크에 온 김남숙(에바)과 '김미인'(꿀마이)이라는 두 아이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이들을 각각 입양아로 받아들인 두 가정은 매년 서로를 방문했고, 에바와 꿀마이는 펜팔 친구가 된다. 하지만 에바가 열두 살이 되던 해 편지가 끊겼고, 두 사람은 30년 만에 재회한다.


오랜만에 에바를 만난 꿀마이는 자신의 고통스러운 성장 과정을 털어놓고, 에바는 입양의 숨겨진 현실을 기록하겠다고 결심한다.


소설은 같은 비행기를 타고 이국에 왔지만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두 여성의 삶을 통해 입양의 서사가 결코 하나의 이야기로 수렴될 수 없단 사실을 보여준다. 또 "아시아로부터 버려졌고 서양의 구원을 받았다는 그 서사"가 얼마나 무지한 환상인지도 드러낸다.


에바는 자신의 뿌리를 찾는 과정에서 불편한 진실도 목도한다.


고아가 아닌데도 고아로 기록된 채 입양됐고, 그의 생일은 한국의 입양기관이 만들어낸 허구였다. 한국의 부모에 대한 정보는 '기밀'로 분류되고, 이는 곧 입양인들에게 자기 자신에 대해 알 권리가 제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극 중 에바는 이렇게 말한다. "내 과거는 새카만 구멍이에요."


그러면서 그는 "모든 인간은 자신의 정보에 완전하고 자유롭게 전근할 권리가 있다"고 강조한다.


한국계 덴마크 작가 리 랑그바드한국계 덴마크 작가 리 랑그바드 [ⓒ Sara Galbiati, Gyldendal. 재판매 및 DB 금지]


이달 16일 출간 예정인 리 랑그바드(46)의 소설 '나의 통역사'(푸른숲 펴냄) 역시 입양아 문제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다.


1980년 한국에서 태어나 덴마크로 입양된 리 랑그바드는 국가 간 입양과 이를 용인하는 사회적 구조를 시적 언어로 고발한 작품인 '그 여자는 화가 난다'로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신작에서는 덴마크로 입양된 한 여성이 한국의 친가족을 만나기 위해 수년간 한국을 오가며 자기 정체성을 찾는 과정을 그렸다.


주인공인 '나'는 수년에 걸쳐 한국을 방문하며 친가족을 만난다. 하지만 언어의 장벽 탓에 가족과의 대화는 덴마크계 한국인 여성 통역사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게 된다.


여성 통역사는 단순한 소통 창구가 아니라 '나'의 동성 연인이기도 하다.


만약 이런 사실을 가족들이 알게 되면 어떻게 될까. 출생과 동시에 가족에게 이미 한 차례 버림받은 상처가 있는 '나'는 또다시 버려질 수 있다는 두려움에 망설인다.


디아스포라와 소통, 언어, 그리고 퀴어 문제를 섬세하게 다룬 작품으로, 리 랑그바드는 다음 주 한국을 방문해 기자간담회를 연다.


한국계 미국인 작가 앤절라 미영 허한국계 미국인 작가 앤절라 미영 허 [ⓒ Miki Anagrius. 재판매 및 DB 금지]


◇ 한국 옛이야기 재해석해 이민자 정체성 탐구


한국의 옛이야기를 통해 이민자의 정체성을 탐구한 소설도 있다.


한국계 미국인 소설가인 앤절라 미영 허(46)의 '우리, 메아리처럼'(열린책들 펴냄)의 주인공은 '유령 입자'라 불리는 중성미자를 연구하는 한국계 미국인 2세 물리학자인 엘사. 그는 어머니가 들려주는 설화 속 여성들의 비극과 집안의 저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과학이라는 합리와 이성의 세계로 도피한다.


하지만 세상의 끝인 남극 기지까지 어두운 운명의 그림자가 드리우자, 엘사는 저주의 사슬을 끊어 내기 위해 옛이야기 속 진실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엘사는 스웨덴에서 자신과 닮은 상처를 지닌 한국계 스웨덴인 교수 오스카르를 만나게 되는데, 입양아 출신인 오스카르는 엘사가 에밀레종, 심청 등 한국의 설화를 재해석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에서 중요한 안내자 역할을 한다.


한국계 미국인 작가 윤지현한국계 미국인 작가 윤지현 [ⓒ Octobee Studio. 재판매 및 DB 금지]


한국계 미국인 작가 윤지현(34)의 소설 '그리고 강은 그녀를 끌어내린다'(휴머니스트 펴냄)는 장화 홍련 설화를 현대적 스릴러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미국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한국계 이민자 가족에 닥친 비극을 다뤘다.


어느 날 마을의 강에서 언니 '미래'가 익사체로 발견되고, 어머니를 잃고 미래에게 의지해 살아오던 동생 '수진'은 감당할 수 없는 슬픔에 빠진다.


수진은 집안의 여성들에게만 전해 내려오는 마법을 사용해 죽은 언니를 되살려낸다. 하지만 재회의 기쁨도 잠시, 미래는 점차 난폭하게 변해간다.


작품은 단순한 귀신 이야기가 아니라 이민자 가족의 정체성과 여성의 상처, 세대 간 트라우마 문제를 다룬다.


윤수진 작가 역시 다음 주 한국에서 기자간담회를 연다.


▲ 민 킴 = 허여 셀린느 옮김. 520쪽.


▲ 나의 통역사 = 손화수 옮김. 316쪽.


▲ 우리, 메아리처럼 = 임슬애 옮김. 616쪽.


▲ 그리고 강은 그녀를 끌어내린다 = 박지선 옮김. 472쪽.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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