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출판진흥원장 취임한 김승수 전 전주시장 "책이 삶 되도록"
시장 시절 일군 '책의 도시' 경험, 대한민국 출판 정책으로 확장
"낮은 성인 독서율 제고 우선…지역 콘텐츠로 출판 생태계 변화"
정치 복귀는 선 그어…"이 자리서 사회적 기여 도전"
김승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촬영 나보배]
(전주=연합뉴스) 나보배 기자 = 전북 전주에는 특별한 도서관들이 있다.
산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학산숲속시집도서관'과 연꽃이 활짝 핀 덕진공원 한가운데의 한옥형 '연화정도서관'이 있다. 중화산동 '꽃심도서관'은 탁 트인 북카페를 연상시킨다.
자작자작 책 공작소, 책기둥도서관, 정원문화도서관, 서학예술마을도서관, 건지산숲속도서관, 한옥마을도서관, 첫마중길 여행자도서관 등도 자랑거리다.
한옥마을과 비빔밥의 도시 이미지로 정형화된 전주에 시나브로 다채로운 특화도서관이 곳곳에 들어섰다.
그러자 '책의 도시 전주'라는 새로운 명성이 더해졌다.
책을 보고 빌리던 딱딱한 대형 도서관이 시민 곁으로 한발짝 더 다가온 '도서관 혁신'의 중심에는 김승수(57) 전 전주시장이 있었다.
그는 재임 기간(2014∼2022년) '책이 삶이 되는 책의 도시 전주'를 표방했다.
곳곳에 작은 도서관과 책놀이터 등이 들어섰고 다양한 관련 사업으로 전주는 문화도시로 발돋움했다.
그가 '도서관 시장'이라 불리는 이유다.
그런 그가 지난달 출판산업 육성과 독서문화 확산을 총괄하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으로 취임했다.
김 원장은 28일 "2022년 이맘때쯤 8년간의 시장 임기를 마무리한 뒤 4년 가까이 여행도 하고 책도 쓰고 전국 여기저기서 강연 등을 하면서 지냈다"고 했다.
그러다가 최근 지인들의 권유로 출판진흥원장 자리에 응모해 선임됐다.
김 원장은 "운명처럼 다가온 기회이자 소명이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임하고 있다"며 취임 소감을 밝혔다.
2015년 전북혁신도시로 이전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은 책을 만드는 산업 전체와 국민 독서 문화를 지원하는 국가기관이다.
출판사 및 콘텐츠 지원을 비롯해 출판 정책 연구 및 조사, 독서문화 진흥, 출판 유통 개선, 출판 전문인력 양성, 해외 진출 지원, 전자출판 육성, 간행물 심의 등을 한다.
아이에게 그림책 선물하는 김승수 시장 (전주=연합뉴스) 2017년 5월 15일 김승수 전주시장이 전북 전주시 완산구 한국전통문화전당에서 열린 '2017 대한민국 책의 도시 선포식'에서 한 아이에게 그림책을 선물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김 원장이 마주한 가장 시급한 과제는 지난해 38.5%까지 떨어진 성인 독서율을 끌어올리는 일이다.
그는 "역대 최저 독서율이지만, 성인들 스스로 독서의 부족함을 느끼고 있는 만큼 이들의 눈길을 다시 책으로 돌리는 방안을 찾겠다"고 역설했다.
이어 "디지털 시대일수록 인공지능(AI)의 토대가 되는 인문학, 즉 독서의 가치를 되살리는 게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그가 이처럼 책의 힘을 믿는 건 전주시장 재임 시절부터 이어져 온 철학과도 맞닿아 있다.
당시 그가 '책이 삶이 되는 책의 도시'를 슬로건으로 내세웠던 것도 결국 책에 도시의 콘텐츠가, 또 미래가 있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예컨대 전주가 전국에서 책을 가장 많이 읽는 도시가 된다면 세계적인 작가들이 찾아오고 싶어 하는 문화 경쟁력을 갖추게 된다는 구상이다.
김 원장은 "거기에서 도시의 진짜 힘이 나온다고 믿는다"며 "전주 곳곳의 도서관은 물론 완판본과 최명희의 '혼불' 등 전주가 가진 짙은 문화적 토대 위에서 출판산업을 일으키고 싶다"고 말했다.
독립출판사 대부분이 서울이나 파주출판단지에 몰려 있는 게 현실이어서 녹록지 않음을 그는 안다.
하지만, 경남 통영의 '남해의 봄날'처럼 지역 정체성을 갖춘 출판사도 충분히 자생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김 원장은 "지역 콘텐츠를 기반으로 한 출판 클러스터를 조성하거나, 지역 출판 학교를 만들어 작가를 키워내는 등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지역 출판 생태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면서 "이처럼 지역의 고유한 자산을 활용해 지방 산업을 일으키는 것이야말로 혁신도시가 지역에 들어선 진짜 이유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전주는 조선시대 명실상부한 책의 도시였다고 설명한다.
김 원장은 "완판본의 탄생에서 알 수 있듯 당시 전주부는 조선의 단일 도시로서는 가장 많은 책을 출간했고, 전주시는 조선시대 최고의 출판문화 클러스터였다"라며 "이 과정에서 축적된 지적, 인적, 환경적, 기술적 자산들은 개인이 발행하는 사간본과 상업적 목적으로 출간한 책인 방각본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소개했다.
전주시청 '책 기둥 도서관' 개관식 (전주=연합뉴스) 2020년 11월 10일 전북 전주시청에서 김승수 전주시장과 김수영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등이 참석한 '전주시청 책 기둥 도서관' 개관식이 열리고 있다. [전주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출판산업의 비약을 꿈꾸는 김 원장은 정치 복귀 가능성에는 선을 그었다.
두 번의 시장 시절 그가 지향했던 도시의 방향과 시민들의 요구 사이에서 겪은 괴리가 컸기 때문이다.
김 원장은 "전주가 가야 할 방향은 인문 도시라고 생각했지만, 개발을 원하는 시민들의 요구도 있었다"며 "정치를 하며 새로움을 창출하는 데 한계를 느꼈고, 자연스럽게 (3선) 불출마 결정을 한 뒤 시장직을 내려놓았다. 권력욕이 없는 편이라 결정을 내리기가 어렵지는 않았다"고 털어놨다.
이제 정치인보다는 '도시 혁신가'로 불리길 원하는 그는 자신의 롤모델로 서명숙 사단법인 제주올레 이사장을 꼽았다.
지난달 세상을 떠난 서 이사장은 정치와 거리를 뒀지만 '제주 올레길'이라는 위대한 문화 자산을 만들어낸 인물로 평가받는다.
김 원장 역시 지난 25년간 공공정책과 도시에 천착해온 도시 혁신가로서 어떻게 하면 도시가 시민에게 풍요로운 삶을 제공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찾아낸 나름의 답을 자신의 저서 '도시의 마음(다산북스)'에 풀어놓기도 했다.
김 원장은 "정치에만 제 소명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느 자리에서든 사회적 기여를 할 수 있다"며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이 전주시장만큼의 권한은 없지만 대한민국 출판문화 발전을 위해 도전해볼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며 한국 출판산업의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고 싶다고 포부를 전했다.
전주시장 8년을 포함해 줄곧 행정·정치의 길만 걸었던 그가 왜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일하고 싶었는지,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warm@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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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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