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소주병 , 공광

권오정 문화부장/ 기자

등록 2026-05-28 08:17

■ 《명시 산책》 소주병 , 공광규



'소주병' 


술병은 잔에다

자기를 계속 따라 주면서

속을 비워 간다


빈 병은 아무렇게나 버려져

길거리나 쓰레기장에서 굴러다닌다


바람이 세게 불던 밤 

나는 문밖에서

아버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나가 보니

마루 끝에 쪼그려 앉은

빈 소주병이었다


/공광규, 소주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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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주병'은 서민적 삶과 가장의 비애를 담담하면서도 깊은 울림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시인은 일상 속 작은 사물에서 인간 존재의 슬픔과 시대의 그림자를 길어 올리는 데 뛰어난 시인으로 평가받는다.


이 시에서 가장 중요한 상징은 ‘빈 소주병’이다. 소주병은 단순한 술병이 아니라 가난한 가장의 삶을 비추는 거울로 등장한다.


첫 연에서 “속을 비운다”는 표현은 술병 속 술이 비워지는 뜻이면서 동시에 사람의 마음과 삶이 점점 메말라 가는 상태를 함께 암시한다. 


술은 잠시 고단함을 잊게 하지만, 결국 남는 것은 공허함뿐이다.


둘째 연의 버려진 빈 병은 사회 주변부로 밀려난 서민의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골목과 쓰레기장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삶의 막다른 자리이다.


시의 핵심은 셋째 연과 마지막 연입니다.

화자는 바람 부는 밤, 문밖에서 아버지의 흐느낌을 듣는다. 여기에는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의 외로움과 무너지는 자존심이 절절하게 담겨 있다.


마지막 구절 “빈 소주병이었다”는 매우 강렬한 은유이다.


아버지는 더 이상 단순한 사람이 아니라, 속이 텅 빈 소주병처럼 삶에 시달리고 닳아버린 존재로 형상화된다. 그러나 그 빈 병에는 가족을 위해 참고 견딘 세월과 침묵의 눈물이 배어 있다.


공광규의 '소주병'은 거창한 언어 없이도 독자의 가슴을 울리는 힘이 있다.


특히 산업화 시대를 살아낸 한국의 아버지 세대에게 이 시는 단순한 작품이 아니라 삶의 기록처럼 읽힌다.


술병 하나를 통해 가난, 가장의 책임, 가족 사랑, 인간의 외로움을 모두 담아낸 점에서 매우 뛰어난 서정시라 할 수 있다.

 

권오정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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