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생각의 산파다. 움직이는 비행기나 배나 기차보다 내적인 대화를 쉽게 이끌어내는 장소는 찾기 힘들다.” – 「여행의 기술」, 알랭 드 보통
진정한여행
나짐 히크메트(튀르키예 시인)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씌어지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려지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불멸의 춤은 아직 추어지지 않았으며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
무엇을 해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 비로소 진정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가 비로소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생각의 장소를 찾아 정동진에서 안목을 지나 제주에 발을 내렸다. 다시 나를 찾아가는 여행을 시작한다.
봄은 왔다
다시 서울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늦었다
밤새도록 술상을 두드리던 나무젓가락처럼
청춘은 부러지고
이제 내 마음의 그림자도 너무 늙었다
ㅡ정호승의 「검은 민들레」 부분

“긴 하루 지나고 언덕 저편에 빨간 석양이 물들어 가면 놀던 아이들은 아무 걱정 없이 집으로 하나둘씩 돌아가는데 나는 왜 여기 서 있나.....”
전인권의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리는 것 같다. 나는 아직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거리를 떠돈다.
습관처럼 바다에 와서 바람의 손을 잡고 중얼거린다. 밥먹고 잠자며 살아가는 일상의 지루함과 절망의 깊은 늪에서 허우적거리던 한 때가 있었는데...그 때 바람이 음울하고 깊은 삶의 고통에서 나를 구했다.
내가 살아온 길은 순탄한 넓은 포장도로가 아니라 울퉁불퉁한 자갈길을 달려왔다. 운명은 마치 욥과 같이 행복의 단맛을 핥으려 할 때마다 고통의 나락으로 나를 내동댕이 쳤다.
나는 웬만해서는 마음을 열지 않는 사람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면 덜컥 겁부터 난다. 길어야 1년 3개월. 사랑이 다가와 머무는 짧은 순간 보다 사랑을 잃고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고통의 시간이 더 아프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나를 보고 표정이 없다고 말한다. 평소에 말이 없고 무표정한 얼굴은 고통을 참다못해 무감각해진 탓인지도 모른다.
바다에 이르는 여정은 지난한 삶을 거쳐 어느덧 반환점을 돌아 언덕을 내려가고 있는데 이 나이에 이르러서도 사랑에 관한 어떤 정의도 찾아내지 못했다. 여러 감정들이 윤무(輪舞)하면서 어지럽게 파도치고 있다.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
세찬 바람은 내 책을 여닫고
파도는 분말로 바위에서 마구 솟구치나니!
날아라 온통 눈부신 책장들이여!
부숴라 파도여!
뛰노는 물살로 부숴버려라.
ㅡ폴 발레리 「해변의 묘지」 부분
바람이 나를 살게 했다. 바람은 때때로 심각한 고통을 주는 거친 파도를 몰고와서 내 인생의 궤적을 뒤흔들어놓기도 하였지만은, 바람이 주는 고통이 나의 존재를 깨닫게 하고 삶의 둔탁한 피질을 자극하여 나를 살아가게 했다.
세상에 모든 나무들은 바람에 흔들리면서 자란다. 다시 바람 앞에서 살을 에이는 삭풍을 맞으며 밥딜런의 「노킹 온 해븐스 도어」를 듣는다.
1997년에 개봉한 독일 영화《노킹 온 해븐스 도어》포스터
1997년에 개봉한 독일 영화 《노킹 온 해븐스 도어》는 밥 딜런의 동명의 곡에서 제목은 따왔다. 토마스 얀 감독의 이 영화는 2013년 5월에 재개봉했다.
15년 만에 스크린에 재현된 90년대 최고의 명작과 20세기 최고의 음악! 생의 마지막 순간, 천국을 향한 두 남자의 뜨거운 여행 영화 이야기다.
뇌종양 진단을 받은 마틴과 골수암 말기의 루디는 같은 병실에 입원한다. 시한부 판결을 받아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공통점 외에는 전혀 다른 성격의 두 남자. 단 한번도 바다를 보지 못한 루디를 위해 마틴은 그와 함께 바다로 향하는 생애 마지막 여행을 시작한다.
영화《노킹 온 해븐스 도어》한 장면
하지만, 여행을 위해 그들이 훔친 차는 100만 마르크가 들어있는 악당들의 스포츠카였던 것. 뜻밖의 돈을 얻게 된 이들은 천국의 문턱에서 그들이 평소 하고 싶었던 소원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악당과 경찰의 추격 속에 그들의 여행은 위태롭게 흘러 가는데…
영화《노킹 온 해븐스 도어》한 장면
마틴과 루디가 구름 위에 앉아서 바다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천국에 대해서 들어본 적 있어?
천국에서는 주제가 하나야....바다지...
바다의 아름다움과 바다에서 바라본 석양을 이야기를 할 뿐이지.
물속으로 빠져들기 전 핏빛으로 변하는 커다란 공...
노을이 질 때... 불덩어리가 바다로 녹아드는 모습은....
정말 장관이지.
사람들은 자신이 느꼈던 그 강렬함과
세상을 뒤덮는 바다의 냉기를 논하지
유일하게 남아 있는 불은 촛불같은
마음 속의 불꽃이야.
영혼 속의 불길만이 영원한 거야.
ㅡ영화 《노킹 온 해븐스 도어》 중에서
우리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남은 시간을 보낼까? 세상과 작별할 시간이 다가올 그때...손 잡고 할 이야기가 있을까? 지금부터 천천히 생각해 봐야겠다.
영화《노킹 온 해븐스 도어》한 장면
박상봉 사회부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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