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시인, 별이 되다
― 故 이생진 시인을 추모하며
이생진 시인 출저 별마당
바다의 시인, 별이 되다
― 故 이생진 시인을 추모하며
한 세기를 살아낸 시인이 바다 끝에 닿아, 마침내 영원의 항해를 시작했다. 아흔일곱 해의 세월을 품고 떠난 고 이생진 시인은 한국 현대시사에서 ‘바다의 시인’으로 불린 인물이다.
- 섬과 바다, 시인의 평생의 주제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육지에서 학문과 문학을 시작했지만, 삶의 무게가 깊어질수록 마음은 섬과 바다를 향했다. 연안과 도서를 오가며 그는 그곳 사람들의 얼굴을 보았다. 거친 바람과 파도 속에서 하루를 버텨내는 어부의 손, 차가운 물결 속으로 몸을 던지는 해녀의 숨결, 그리고 작은 섬마을에서 묵묵히 이어지는 생의 리듬.
그 풍경 속에서 그는 시를 길어 올렸다. 섬은 고립과 외로움의 상징이기도 했으나, 동시에 생존의 터전이었고, 바다는 모든 것을 품어내는 거대한 어머니였다. 시인은 이 두 세계를 오가며 인간 존재의 근원과 존엄을 노래했다.
- 대표작, ‘섬에서 시작하여 바다로 가자’
그의 대표작 *〈섬〉*은 고독한 인간 존재의 은유로 읽힌다. 바다 위에 떠 있는 작은 섬처럼 인간은 홀로일 수밖에 없음을 직시하면서도,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바다로 가자〉*라는 선언을 통해 섬의 고독을 넘어서 삶의 더 큰 지평으로 나아가자고 우리를 이끌었다.
그의 언어는 간결하면서도 묵직했다. 화려한 수사보다 맑은 물결처럼 투명한 언어로, 그는 바다의 숨결을 전했다. 짧은 행마다 실린 울림은 단순한 서정의 차원을 넘어, 한국 현대시가 도달한 한 봉우리를 보여준다.
- 삶과 문학의 합일
이생진 시인의 문학은 삶과 동떨어져 있지 않았다. 그는 은퇴 후에도 섬에 머물며 시를 쓰고, 바다를 걷고, 사람들과 어울렸다. 시 속의 바다는 문학적 상징을 넘어 그의 일상이자 삶의 방식이었다. ‘삶과 시의 합일’이라는 오래된 화두를, 그는 자기 방식대로 완성한 것이다.
- 우리에게 남긴 유산
이제 시인은 떠났으나, 그의 시는 여전히 파도처럼 남아 우리를 두드린다. 섬의 고독을 끌어안으면서도 결국 바다를 향해 나아가던 그의 시적 여정은, 오늘의 우리에게도 유효한 물음이다.
우리는 각자의 섬에서 살아간다. 고립과 단절의 시대, 시인의 목소리는 우리에게 말한다.
“섬에 머물지 말고, 바다로 나아가라. 더 넓은 생의 지평을 향해 나아가라.”
- 헌사
안녕히 가십시오, 시인이여. 당신이 남긴 말과 노래는 바람에 실려 여전히 출렁이고 있습니다. 당신의 항해는 끝났지만, 당신이 남긴 시의 바다는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당신의 목소리를 따라 조용히 되뇌일 것입니다.
“섬에서 시작하여, 바다로 가자.”
바다는 언제나 그의 언어였다. 섬과 물결, 고독과 기다림이 그의 시 속에서 맥박쳤다. 97년의 긴 세월을 오롯이 시와 더불어 살아온 고(故) 이생진 시인께서 이제 별빛으로 돌아가셨다. 그의 시는 우리에게 바다의 푸름을, 섬의 고독을, 삶의 깊이를 남겨주었다. 이 자리에 바다의 시인을 추모하며 헌정의 시 한 편을 바친다.
<추모시>
바다의 시인, 별이 되다
― 故 이생진 시인을 추모하며
쳉암 배성근
바다와 더불어 살던 한 시인이
아흔일곱 해의 항해를 마치고
마침내 영원의 포구에 닿으셨다.
섬과 바다는 그의 언어 속에서
늘 살아 움직였다.
해녀의 숨결, 어부의 그을린 손,
고향을 잃은 이의 그리움마저
그의 시는 한 편의 파도처럼 품어내었다.
이제 바다는
그를 고요히 끌어안고
하나의 별빛으로 되돌려 주었다.
그 별빛은 물결 위에 출렁이며
남은 우리 가슴 속에
섬의 노래로, 바다의 기도로 머무를 것이다.
시인이여,
당신이 남긴 단어 하나, 숨결 하나는
푸른 바다의 물결처럼
끝내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당신의 긴 항해를 기억하며,
우리 또한 그 물결 위에서
다시 시를 시작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당신이 남긴 목소리를 따라
조용히 되뇌입니다.
“섬에서 시작하여, 바다로 가
시와늪문인협회 대표 배성근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헤드라인 뉴스
-
《인문정치》 희생하는 정치인, 군림하는 정치인
희생하는 정치인, 군림하는 정치인 스웨덴 쇠데르텐 대학교 정치학과 교수인 최연혁 박사는 저서 <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를 통해 25년간 스웨덴 생활의 경험들을 나눠주며, 대한민국의 미래 모델을 모색하고 있다. 복지국가의 상징과도 같은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말은 원래 스웨덴을 두고 나온 것이다. 사실 행복이나 복지처럼 정치와 잘 어울리는 말도 없다.
-
.《인문 정치》 정치적이되 아름다워야 한다
정치적이되 아름다워야 한다 여야 사이뿐 아니라 같은 당 계파 사이에 오가는 말을 듣다 보면, 이들이 정치를 하고 있는 건지 싸움을 하고 있는 건지가 구분이 안 된다. 정치에서 웃음이 사라진 지도, 정치가 시민들을 웃게 만든 지도 오래다. 더 큰 문제는 그다음이다. 뭐든 상대방 탓으로 만들고자 하고 마치 ‘거울 이미지 효과’처럼 모진 말을 반사하듯 주고받는
-
《인문사회》 젊은 인문사회과학도들의 곤경
젊은 인문사회과학도들의 곤경 1980년대 초·중반에는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학자가 20대에 교수가 되는 일이 적지 않았다. 1980년 전두환의 신군부가 정권을 쥐자마자 단행한 소위 ‘7·31 교육개혁’으로 졸업정원제가 실시되어 대입 정원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갑자기 교수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 인문사회계도 취직이 비교적 쉬웠다. 지금은 특수한 분야를
-
《인문사회》문화 ‘아래로부터의 복지
문화 ‘아래로부터의 복지’ 문화란 그저 자연과 분리되는 인간의 활동일 수도 있고 인간이 사람답게 살기 위하여 갖추어야 할 기본가치일 수도 있는데 요즈음 이 말이 상당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문화생활을 한다는 것이 이미 삶의 수준을 상징적으로 말해 주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활동에 문화의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문화는 이제
-
《인문사회》 “살 도리들을 하시오
“살 도리들을 하시오” “합하면 조선이 살 테고, 만일 나뉘면 조선이 없어질 것이오. 조선이 없으면 남방사람도 없어지는 것이고 북방사람도 없어지는 것이니 근일 죽을 일을 할 묘리가 있겠습니까. 살 도리들을 하시오.” 해방 후 우리나라가 통일 독립국가가 되지 못하고 두 동강이 나는 것을 지켜본 노혁명가 서재필 선생이 1949년 3·1절을 맞아 ‘조선민족에게
-
《인문정치》 정체 모를 야당
정체 모를 야당 한국 정치에서 야당이라는 말은 묘하다. 이름이 자주 바뀌다보니 당명을 특정해 말하기 어려울 때 하나의 통칭으로 사용되는데, 선거에서 크게 패하거나 ‘만년 야당’ 같은 자조적인 분위기가 되면 더 많이 애용된다. 한때는 ‘보수 야당’이나 ‘제도권 야당’으로 불렸다. 두 말 모두 외국어로 옮기기 어렵고 글자 그대로 직역하면 오해를 불러오기 쉬운
-
《인문사회》 권력의 ‘투명망토’가 된 언론
권력의 ‘투명망토’가 된 언론 <투명인간>이라는 공상과학 소설이 있다. 19세기 말 웰스라는 영국 소설가가 발표한 작품이다. 영어 원제목은 투명인간이 아니라 ‘안 보이는 사람(invisible man)’인데, 투명하다는 뜻이 요즘에는 “안 보이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보이는” 의미로 통용되고 있기 때문에 투명한 인간이라고 요즘 말하면 투명인간
-
《인문정치》 정당이 바로 서야 민주정치가 바로 선다
정당이 바로 서야 민주정치가 바로 선다 어느 나라든 민주주의는 두 단계로 진행된다. 첫 번째 단계는 권위주의 체제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우리는 1970~80년대 민주화운동을 거쳐 그 과제를 완수했다. 두 번째 단계는 민주주의를 사회 속에 안착시키는 일로, 지금 한국 사회는 이 과제를 둘러싸고 혼란을 거듭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앞선 민주주의 국가들의
-
《인문사회》 증오의 시대
증오의 시대 아주 사무치게 미워하는 마음이란 뜻을 가진 단어는 뭘까. 증오다. 증오 하면 곧장 복수란 단어가 떠오를 만큼 섬뜩한 정서다. 개인의 증오 정서와 복수는 막장드라마에서 차고 넘치게 볼 수 있다. 그래도 그건 가상이지 현실이 아니다. 현실에선 증오의 집단정서가 인터넷과 SNS를 가득 채우고 있다. 평소 타인에게 절대 사용하지 않을 험한 말과
-
《인문사회》 우리가 주인공인 세계사를 쓰자
우리가 주인공인 세계사를 쓰자 우리에게 세계사는 무엇을 의미할까? 고등학교까지의 정규 교과과정을 충실히 이해했다면 아마도 우리의 역사, 즉 국사 이외의 역사를 세계사로 생각할 것이다. 학과의 구분을 국사학과, 서양사학과, 동양사학과로 구분하고 있으니 국사 이외의 역사가 세계사이고 그 세계사가 주로 서양사와 동양사로 채워져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지리
-
《사설》‘한동훈 배신자’ 논란, 끝장 토론 하라
'한동훈 배신자’ 논란, 끝장 토론 하라. 국민의힘은 한동훈 전 대표 제명을 계기로 내전 상태에 빠져들었다. 107석 소수야당으로, 정책과 정치에서 영향력을 잃어버린 정당이 이만한 일로 싸울 때냐는 비판이 많다. 한동훈 제명 과정은 위태로웠다. 이성적으로, 순리대로 했더라면 없었을 일들이 반복된 탓이다. 당무감사위원장은 “(사람을) 받아 죽이면 소는 돌로
-
《사설》 배신자 주홍글씨
배신자 주홍글씨 왜 장동혁은 한동훈을 제명하려 하는가. 탄핵 반대와 찬성 세력 간의 대결로 보는 시각도 있고, 두 사람 간의 개인적인 원한에서 이유를 찾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나는 ‘배신자 프레임’ 그 자체에서 찾아야 한다고 본다. 끊임없이 배신자를 찾아온 보수 정치가 한동훈을 새로운 배신자로 지목했다. 배신자 돌리기의 다음 차례는 누가 될 것인가.
-
[미술 비평] 김진 작가의 회화와 시 <재생> 두 작품 속 흥미로운 대화_이원희 기자
재생 / 김진 구불구불 황톳길 난 저 언덕 저편으로 햇살에 절여 반짝거리는 스카프가 고요한 연기로 날아오네 감미로운 색색으로 헤아릴 수 없이 늘어나 상처 가혹한 땅 곳곳에 자리 잡네 서두름이 없이 꼼꼼히 상처를 덮고는 풀잎 그 언덕을 재생시키네 하얀 뭉게구름 조각 새것들이 오고 지난날 통기타로 노래하던 아름다운 이도 그 언덕에 재생되네 풀
-
[문학 기획] 김진 작가의 소설 위험한 이방인
위험한 이방인 고향마을로 돌아오기는 근 7년 만이었다. 서늘한 새벽 공기를 가르며 마을 어귀에 들어섰다. 기억 속의 포근했던 풍경은 온데간데없고, 낯선 적막감이 무겁게 감돌았다. 지난밤 내린 비로 축축해진 흙길이 발걸음을 무겁게 눌러왔다. 내 몸을 감은 무거운 쇠사슬, 바닥까지 늘어진 쇠사슬 자락은 땅을 그으며 치렁치렁 소리를 냈다. 7년간의 고행 끝에
-
《사설》 한동훈 제명한 장동혁...자멸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제명한 장동혁...자멸하는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이끄는 국민의힘 지도부가 29일 한동훈 전 대표를 제명했다. 2024년 온라인 익명 당원 게시판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 등을 비방해 당 명예와 이익에 피해를 입힌 것이 그 사유다. 게시글 작성자는 한 전 대표 가족이라고 한다. 당 윤리위가 윤 전 대통령 사형 구형일인 지난 14일 새벽 제명안을
-
법원 "김건희 샤넬백 청탁·대가성 인식"... 주가조작은 무죄
법원 "김건희 샤넬백 청탁·대가성 인식"... 주가조작은 무죄 법원이 김건희 여사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혐의의 '공동정범'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김 여사가 공동정범으로 주가조작에 가담했다는 특별검사팀의 판단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앞서 검찰은 김 여사의 행위를 '공모·방조'라고 볼 수 없다며 무혐의 처분한 바 있다. 서울중앙지법
-
범정부 자살대책 추진본부, 강북구 자살예방 현장 찾아 대응체계 점검
범정부 자살대책 추진본부, 강북구 자살예방 현장 찾아 대응체계 점검 서울 강북구(구청장 이순희)는 지난 23일 범정부 자살대책 추진본부가 지역 자살예방사업 추진현황을 점검하고 현장 의견을 청취하기 위해 삼각산보건지소 생명존중팀을 방문했다고 밝혔다. 이번 방문은 국무총리 주재 '2025 국가 자살예방 전략' 발표와 범정부 자살대책 추진본부 출범 이후,
-
용산구, 면허 반납 어르신에 교통카드 최대 68만 원 지원
용산구, 면허 반납 어르신에 교통카드 최대 68만 원 지원 서울 용산구(구청장 박희영)는 2026년 2월부터 운전면허를 자진 반납한 70세 이상 실제 운전자를 대상으로 최대 68만 원 상당의 교통카드를 지원한다. 이는 서울시 자치구 가운데 최고 수준의 지원 규모로, 지원 인원도 기존 100명에서 150명으로 확대했다. 최근 고령운전자의 교통사고와 사망사고
-
삶을 견디는 언어, 시로 건네는 위로의 시간-안도현 시인과 함께 ‘목요詩토크’
재능시낭송협회 경북지회(회장 김용일)가 오는 1월 29일(목) 오후 6시 30분, 구미시 산책길 85 팔팔순두부 2층 카페에서 안도현 시인 초청 ‘목요詩토크’를 연다. 이번 행사는 새해 첫 목요시낭송회로 마련된 자리로 『쓸데없이 눈부신 게 세상에는 있어요』라는 안도현의 신작시집을 중심으로 삶의 상처와 기억, 그리고 그것을 견디게 하는 언어로서의 시를
한국매일뉴스 © 한국매일뉴스 All rights reserved.
한국매일뉴스의 모든 콘텐츠(기사 등)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