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님의 침묵』, 오늘의 목소리로 다시 깨어나다

박상봉 사회부장 기자

등록 2026-09-09 09:42

경북재능시낭송협회, ‘2026 재능시낭송여름학교’ 참가

230여 명 한용운 시 88편 전편 릴레이 낭송…박인환 탄생 100주년도 함께 기려

강원도 인제 만해마을 일원에서 열린 ‘2026 재능시낭송여름학교’가 전국의 시낭송인들과 2박 3일간 성황리에 열렸다.(사진=경북재능시낭송협회 제공)

100년 전 한용운이 남긴 『님의 침묵』이 2026년 여름, 전국에서 모인 시낭송인들의 목소리를 만나 다시 살아났다.


경북재능시낭송협회(회장 김용일)는 지난 8월 28일부터 30일까지 강원도 인제 만해마을 일원에서 열린 ‘2026 재능시낭송여름학교’에 참가해 전국의 시낭송인들과 2박 3일간 시를 읽고 듣고 배우고 공연하는 문학의 시간을 함께했다.


2007년 시작된 재능시낭송여름학교는 올해 스물한 번째를 맞았다. 전국에서 230여 명의 시낭송인과 시 애호가들이 참가했으며, 사흘 동안 한용운의 『님의 침묵』 88편을 비롯해 특별시낭송대회 71편, 박인환 시 10편 등 모두 170여 편의 시가 울려 퍼졌다.


첫날 열린 ‘2026 재능시낭송대회 특별예선’에서는 71편의 시가 무대에 올랐다. 참가자들은 한 편의 시를 위해 오랜 시간 다듬어온 목소리와 호흡으로 각자의 시 세계를 펼쳐 보였다.


특히 재능시낭송여름학교를 창시한 김성우 고문이 2007년 첫 행사 당시 입었던 와인색 재킷을 다시 입고 무대에 올라 여름학교가 걸어온 시간을 돌아보며 참가자들을 격려해 의미를 더했다.


저녁에는 문학평론가 이숭원 교수의 ‘만해 한용운은 왜 『님의 침묵』을 썼나?’를 주제로 한 특강이 이어졌다. 한용운이 살았던 시대와 삶, 『님의 침묵』이 탄생한 배경과 문학적 의미를 살펴보며 이튿날 펼쳐질 전편 낭송의 깊이를 더했다.


88편의 시, 5시간의 목소리…100년의 시간을 잇다


둘째 날은 새벽 5시 백담사 트레킹으로 시작됐다. 이어 한용운 탄생일인 8월 29일을 기념해 만해마을에서 230여 명이 33개 팀으로 나뉘어 33번의 종을 울리는 타종식이 진행됐다.


이번 여름학교의 절정은 ‘백년의 숨결… 『님의 침묵』을 노래하다’ 공연이었다. 18개 팀의 참가자들이 『님의 침묵』에 수록된 88편 전편을 약 5시간 동안 릴레이 형식으로 낭송했다.


경북재능시낭송협회도 ‘백년의 숨결…『님의 침묵』을 노래하다’ 릴레이 공연에 대거 참여해 낭송 솜씨를 뽑냈다.(사진=경북재능시낭송협회 제공)

경북재능시낭송협회 회원들도 대거 참여해 경북의 목소리를 보탰다. 김형숙·배선미·김명옥·최영미·김미현 등은 「최초의 님」, 「두견새」, 「나의 꿈」, 「우는 때」, 「타골의 시 GARDENISTO를 읽고」 등을 차례로 낭송하며 한용운의 시 세계를 무대 위에 펼쳐냈다. 고정숙·손예섬·오은정·이송진·김옥란·진주희 등은 연주와 무대 구성에 참여해 낭송과 음악이 어우러지는 공연을 함께 완성했다.


특히 한 사람이 한 편의 시를 낭송하고 다음 낭송자가 또 다른 시를 이어받는 방식으로 진행돼, 개별 작품은 서로 다른 목소리를 가지면서도 88편 전체가 하나의 긴 시처럼 이어졌다. 경북 회원들 역시 각자의 목소리와 호흡으로 만해의 언어를 되살리며 100년 전의 시를 청중들에게 건넸다.


88편 전편 낭송은 단순히 한 권의 시집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공연이 아니었다. 사랑과 이별, 기다림과 저항으로 이어지는 한용운의 시 세계를 사람의 몸과 목소리로 한 세기 너머 오늘까지 이어놓는 작업이었다. 5시간에 걸친 공연이 끝나자 객석에서는 기립박수가 터져 나왔다. 무대에 오른 낭송자와 긴 시간 시를 함께 들은 청중 모두가 한 권의 시집을 완성한 순간이었다.


경북재능시낭송협회 회원들이 공연을 마치고 무대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경북재능시낭송협회 제공)

김용일 경북재능시낭송협회 회장은 “『님의 침묵』 전편 88편 낭송은 이번 행사의 성격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님은 갔습니다’로 시작하는 한 세기 전의 언어가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낭송자들의 목소리를 통과하면서 2026년의 새로운 『님의 침묵』으로 태어나는 감동을 겪은 것이 의미 깊었다”고 말했다.


이어 “박인환의 시 세계와 인제를 연결하는 프로그램을 배치해 한용운과 박인환이라는 서로 다른 두 시인의 ‘100년’을 한 공간에서 만날 수 있었다”고 밝혔다.


한용운에서 박인환으로…두 시인의 ‘100년’이 만나다


이번 여름학교의 또 다른 축은 탄생 100주년을 맞은 박인환이었다.


참가자들은 「세월이 가면」, 「목마와 숙녀」 등으로 한국인에게 친숙한 박인환의 시 세계를 돌아보고, 박인환의 시 10편을 중심으로 5개 조를 구성해 작품을 공부하고 해석한 뒤 즉석 시낭송 발표 무대를 펼쳤다.


전문 낭송가만 무대에 오르는 방식에서 벗어나 참가자들이 직접 작품을 읽고 토론하고 해석해 하나의 낭송 무대를 완성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컸다.


한용운의 『님의 침묵』과 박인환의 탄생이라는 두 개의 ‘100년’이 인제라는 한 공간에서 만난 셈이다.


마지막 날에는 문학 강연과 함께 시집박물관, 김응현서예관, 박인환문학관을 둘러보는 인문학 탐방이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박인환의 삶과 작품세계를 살펴보며 2박 3일간의 문학 여정을 마무리했다.


경북재능시낭송협회 회원들이 낭송공연을 마치고 야외에서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사진=경북재능시낭송협회 제공)

“시인의 언어를 오늘의 사람들에게 다시 건네는 일”


경북재능시낭송협회 참가자들에게 이번 여름학교는 전국의 낭송인들과 한 무대에 서는 것을 넘어 시낭송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는 자리이기도 했다.


책 속의 시가 낭송자의 목소리를 만나는 순간 시는 호흡과 표정, 침묵과 울림을 가진 새로운 작품이 된다. 특히 100년 전의 시가 오늘의 사람들에게 여전히 말을 걸 수 있다는 사실은 시낭송이 세대와 시간을 이어주는 또 하나의 문학 행위임을 보여줬다.


김용일 회장은 “시낭송은 시인의 언어를 대신 읽어주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를 지금 이곳의 사람들에게 다시 건네는 일”이라며 “이번 여름학교에서 경험한 감동과 배움을 경북의 시낭송 무대에서도 시민들과 함께 나누겠다”고 말했다.


경북재능시낭송협회는 이번 여름학교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지역의 문학행사와 시낭송 공연 등을 통해 좋은 시를 시민들에게 알리고, 세대와 지역을 넘어 시로 소통하는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2007년 첫발을 내디딘 재능시낭송여름학교는 올해 스물한 번째 여름을 지나며 또 하나의 기록을 남겼다. 230여 명의 사람과 170여 편의 시. 그 중심에는 100년 전 한용운이 남긴 『님의 침묵』이 있었고, 탄생 100주년을 맞은 박인환의 시가 있었다.


한 세기를 건너온 시는 사람의 목소리를 만나 다시 현재가 되었다. 그 100년의 시간을 잇는 목소리 속에 경북의 목소리도 함께 울렸다.


경북재능시낭송협회 회원들이 만해마을과 박인환문학관을 둘러보는 문학탐방을 마치고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사진=경북재능시낭송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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