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단 50년 안팎 영남권 원로시인 6인, 『세월의 강』을 엮다

박상봉 사회부장 기자

등록 2026-08-18 01:54

김성춘·김원길·김이대·도광의·박종해·정민호 참여

부산·안동·경산·울산·경주 잇는 ‘6인시 앤솔로지’

등단작부터 자선시까지…한 시대 건너온 시인들의 문학적 기록

등단 50년 안팎의 문학 경륜을 지닌 영남권 원로시인 6인 시 앤솔로지『세월의 강』

“흐르는 세월은 강물 같아서 머무르지 않고 흘러가지만 시인의 가슴에도 저마다의 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세월의 강, 강은 그리움이고 자유이며 추억이 깃든 곳이기도 합니다.”


등단 50년 안팎의 문학 경륜을 지닌 영남권 원로시인 6명이 한 권의 시집에서 만났다. 김성춘·김원길·김이대·도광의·박종해·정민호 시인이 최근 ‘6인시 앤솔로지’ 『세월의 강』을 월간문학출판부에서 펴냈다.


구순을 바라보거나 그에 가까운 연배의 시인들이 오랜 세월 각자의 자리에서 써온 시를 한데 모았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부산과 안동, 경산, 울산, 경주 등 영남 곳곳을 삶의 터전이자 문학의 근거지로 삼아온 이들은 반세기 안팎 한국문단의 변화를 몸소 겪으며 꾸준히 시를 써왔다.


책 제목인 ‘세월의 강’은 이들 여섯 시인의 삶과 문학을 관통하는 상징이기도 하다. 강물은 한곳에 머물지 않지만 지나온 풍경과 사람의 흔적을 품은 채 흘러간다. 시인들에게 강은 고향의 실제 풍경인 동시에 그리움과 자유, 상실과 추억을 품고 흐르는 내면의 시간이다.


시집의 구성도 이 같은 취지를 살렸다. 여섯 시인은 각각 ‘강’을 주제로 쓴 시 한 편을 앞세우고, 자신의 작품 세계를 보여주는 자선시 13편과 문단에 첫발을 내디딜 당시의 등단작 2편을 함께 실었다. 한 시인의 출발점과 현재를 한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어 개인 시선집과는 또 다른 읽는 맛을 준다. 여섯 갈래로 흘러온 시의 물줄기가 『세월의 강』이라는 한 권에서 합류한 셈이다.


김성춘 시인은 부산 출신으로 1974년 『심상』 신인상을 통해 등단했다. 『물소리 천사』, 『방어진 시편』, 『길 위의 피아노』 등의 시집을 펴냈다. 울산에서 오랫동안 교직 생활을 했으며 현재는 경주에 거주하며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안동 출신인 김원길 시인은 1971년 『월간문학』을 통해 문단에 나왔다. 같은 안동 출신 김이대 시인은 1978년 『자유문예』로 등단해 교직과 창작을 병행했다. 김이대 시인의 작품 가운데 ‘반변천 물소리’, ‘달빛 사랑’, ‘슬도에서’ 등은 자연과 고향, 삶의 기억을 오랜 시간 응시해온 시인의 시세계를 보여준다.


도광의 시인은 경북 경산 출신이다. 1966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된 데 이어 1978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이번 책에 수록된 ‘하양의 강물’, ‘반야월은 지금’, ‘아양교’, ‘갑골길’ 등에는 대구·경산 일대의 구체적인 장소와 그곳을 지나온 시간이 겹쳐진다. 지역의 풍경을 개인의 기억에 머물게 하지 않고 한 시대의 흔적으로 확장해온 시인의 시선이 드러난다.


울산 출신 박종해 시인은 1968년 『울산문학』에 입회한 뒤 1980년 『세계의 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이강산 녹음방초』를 비롯해 다수의 시집을 냈으며 울산문인협회장, 울산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장, 울산북구문화원장 등을 역임했다. 『세월의 강』에는 ‘강은 세월처럼’을 비롯해 ‘산정에서’, ‘파도’, ‘삼월의 바다’, ‘방하착’ 등이 실렸다.


경주 출신 정민호 시인은 1966년 『사상계』 신인문학상 당선으로 문단에 나왔다. 경북문인협회장과 한국예총 경주지부장, 동리목월문학관 관장 등을 지내며 지역문학 발전에도 힘을 보탰다. 이번 시집에는 ‘강가’, ‘항해’, ‘시인이여’, ‘이 푸른 강변의 연가’ 등이 수록돼 오랜 세월 다듬어온 시인의 사유와 서정을 만날 수 있다.


『세월의 강』이 각별한 것은 단순히 원로시인들의 작품을 한데 모은 합동시집에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 1960~70년대 문단에 첫발을 내디딘 시인들의 등단작과 오늘의 작품이 한 책 안에서 마주하면서 한국 현대시의 반세기를 압축해 보여준다. 동시에 중앙문단만으로는 온전히 설명하기 어려운 영남 지역문학의 오랜 흐름과 저력을 확인하게 한다.


강물은 같은 자리를 두 번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시는 지나간 시간을 다시 불러 세운다. 안동의 반변천과 경산 하양의 강물, 울산의 바다와 경주의 오래된 풍경처럼 여섯 시인이 평생 바라보고 건너온 저마다의 강은 서로 다른 이름을 가졌지만 결국 한곳으로 흘러간다. 『세월의 강』은 그렇게 한 시대를 건너온 여섯 시인이 자신들의 문학적 생애를 한 권의 책 위에 합류시킨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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