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환경] 제1부 『최용대의 실용 인문학 2』를 읽다. 침묵의 봄, 카슨의 ‘시적 감수성’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등록 2026-08-16 15:13

과학은 인간의 삶을 얼마나 편리하게 만들었는가. 그리고 그 편리함의 대가로 우리는 무엇을 잃었는가. 『최용대의 실용 인문학 2』는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인간과 자연, 과학과 문명, 발전과 윤리의 관계를 다시 묻는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은 그 질문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하나의 창이다. 카슨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환경보호의 구호로 외치기 보다 생명을 바라보는 감각이었다. 저자는 그것을 ‘시적 감수성’이라 부른다.카슨이 던진 질문은 60여 년이 지난 지금 더욱 절실하다. 인공지능과 생명공학, 우주개발이 새로운 문명의 경계를 열고 있는 오늘,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보다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_이원희 기자



최용대의 실용인문학 2 (행동하는 지성인)

침묵의 봄과 카슨의 시적 감수성 

침묵의 봄과 카슨의 시적 감수성 


인도 작가 아룬다티 로이는 『9월이여 오라』에서 작가는 자기들이 이 세계 속에서 이야기를 고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강과 산이 자신의 이야기를 가장 잘 들어줄 작가를 고르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로이의 말처럼 땅과 바다가 자기 이야기에 가장 귀 기울여줄 작가를 고르는 것이라면, 이 작은 행성의 오랜 역사를 레이첼 카슨만큼 성실하고 주의 깊게 들은 작가도 드물 것이다.

카슨은 인간이 출현하기 훨씬 전에 생긴 바다와, 이 바닷물의 작용으로 긴 세월 침식과 퇴적을 거듭한 육지, 그리고 여기에 살고 있는 야생 생물들의 이야기를 평생 들어온 작가였다.


그녀는 자신에게 친숙했던 스프링데일의 유서 깊은 농촌과 야생지뿐 아니라 아름다운 메릴랜드 해안가와 사우스포트 섬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였다.


1951년 『우리를 둘러싼 바다』를 출간한 뒤 열린 한 오찬 연설에서 카슨은 기계화와 원자력의 절망적인 시대에 지구의 오랜 역사를 정확히 바라보는 것은 인간의 문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인지할 감각을 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수십억 년이라는 바다의 무한한 나이를 생각할 때, 이와 반대로 인간이 이 지구상에 태어난 짧은 시간을 기억할 때, 그리고 수많은 다른 생명체들도 우리처럼 지구를 서식처로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게 될 때 인간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감수성을 갖게 될 것이라고 카슨은 믿었다.


다 자란 고등어 한 마리가 한 철에 50만 개의 알을 낳지만 모두 잡아먹히고 겨우 두 마리만이 평균적으로 살아남는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사르가소해에서 태어난 어린 뱀장어가 낯선 대륙붕과 협곡을 거쳐 긴 여행 끝에 동부의 강어귀로 왔다가 10년 뒤 다시 고향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을 알게 될 때, 그리고 해변에서 흔히 보는 도요새 중 일부가 작은 몸으로 매년 봄이면 1만3천 킬로미터를 날아갔다가 가을이면 다시 그 먼 거리를 되돌아온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사람들은 자연을 바라보는 새로운 감각을 갖게 될 것이라고 카슨은 믿었다.


나약한 인간으로서는 감히 한 발짝도 들어가 보지 못한 깊은 바닷속을 누볐을 뱀장어의 일생과 남미의 파타고니아에서 멀리 북극권까지 날아갔다 되돌아오는 장거리 여행자 도요새의 신비로운 일생에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카슨은 인류가 편리와 이윤의 이름으로 이 작은 생명체들에게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비로소 밝힐 수 있게 되었다.


자연을 안다는 것은 자연에 관한 지식을 축적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 생명이 어떤 세계를 지나왔으며, 무엇과 연결되어 있고, 어떤 방식으로 살아남아왔는지를 이해하는 일이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카슨의 환경론은 인문학과 만난다.


지구는 인간의 조건


2008년 한국도 첫 우주인을 배출했다.

자동차 면허 취득이 현대판 성인식이 된 것처럼 우주개발 산업은 각국의 선진국 진입을 상징하는 기술적 성취가 되었다. 우주인들이 지구를 들락거릴 때마다 전송해준 푸른 별 지구의 사진은 이제 너무도 익숙한 이미지가 되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현대 과학의 궁극적 목표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갖게 된다.


전자, 전기, 화학, 나노, 인공지능, 생명공학까지 포함한 눈부신 첨단 과학기술의 최종 목표는 결국 이 아름다운 행성을 떠나는 데 있는 것인가.


만약 우주에서도 신대륙이 발견된다면 우리는 1620년 자유를 찾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떠났던 순례자들처럼 이 행성을 떠날 수도 있는 것인가.

레이첼 카슨이 한창 『침묵의 봄』을 구상하던 1957년, 구소련은 인류 역사상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성공적으로 발사했다.


당시 한 과학자는 인류가 이제 언제까지나 지구에 붙잡혀 있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말했고, 한 신문은 이를 ‘지구에 갇힌 인류의 탈출을 향한 진일보’라고 대서특필했다.


정치사상가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 서문에서 이 사건을 전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아렌트가 보기에 인간은 오랫동안 하늘에 계신 신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해방을 추구해왔지만, 이제는 그 해방의 끝에서 하늘 아래 모든 존재들의 어머니인 지구와마저 절연하려 하고 있었다.


아렌트에게 지구는 단순한 행성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의 힘으로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인간 조건’의 정수였다.

우리의 서식처인 자연은 오랫동안 인간이 애쓰지 않고도 적응해 살아갈 수 있도록 삶의 조건을 마련해주었다.


나무는 산소를 내놓았고 강은 물을 흘려보냈다. 가뭄 끝에는 비가 내렸고, 홍수 뒤에는 다시 햇살이 비쳤다. 우리는 흔히 자연은 인간에게 무관심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처럼 자연이 조금이라도 인간을 봐주지 않았더라면 이 작은 행성에서 인간의 지배력이 이처럼 커질 수 있었을까.


인간은 자연이 허락한 조건 속에서 번성해왔다.

문제는 현대문명이 그 조건에 적응하는 대신 그 조건 자체를 바꾸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가전기술의 발달로 인간은 여름의 더위와 겨울의 추위를 견디지 못하게 되었다. 대규모 토목기술이 발달하면서 단비에 만족하지 못하고 강을 가두고 산을 깎았다. 항공기술과 생명공학의 발달로 이제 인간은 지구마저 답답하게 여기기 시작했고, 자신의 유한한 수명마저 극복하려 한다.


과학기술 덕분에 인간은 자신의 서식처를 화려한 인공물로 채우기 시작했고 그러자 넓은 지구에 인간만 살아야 하는 것처럼 생각하게 되었다.

자연 속에는 인간을 불편하게 만들고 인간의 뜻을 거스르는 것들이 점점 늘어났다. 해충이 발견되었고, 잡초가 생겼으며, 노화와 죽음마저 의료적으로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이제 지구에는 과학적 방법으로 박멸하거나 제거해야 할 것들이 끝없이 늘어났다.

아렌트는 인간이 자신의 유일한 서식처인 지구에서 탈출하려는 욕망과 수명이 정해진 생명의 유한성에서 벗어나려는 욕망을 같은 과학적 욕망으로 보았다.

그리고 그 욕망이 결국 인간과 지구 사이의 마지막 끈마저 끊어버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아렌트가 현대 과학문명이 낳은 소외를 정치철학적으로 사유했다면, 레이첼 카슨은 과학적 관찰과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인류가 진보와 발전의 이름으로 자신의 서식처에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를 사유했다.

수십억 년 동안 새가 찾아오고 맑은 물이 흐르던 아름다운 땅이 불과 짧은 시간 동안 어떻게 과학의 이름으로 병들어갈 수 있는지를 보여준 것이다.


1962년에 출간된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은 현대 환경운동의 탄생을 가져온 획기적인 저서로 꼽힌다. 


카슨은 이 책에서 선별적으로 해충을 박멸할 수 있다는 과학의 오만이 자연생태계를 어떻게 교란시켰는지를 관찰하며 치명적인 살충제 사용과 미국 화학산업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러나 카슨의 위대함은 단순히 살충제를 ‘현명하게 사용하자’는 데 머물지 않는다. 그녀가 근본적으로 문제 삼은 것은 인간이 자연을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였다.


‘해충’이라는 말은 제2차 세계대전 전후인 1940년대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현대적 용어다. 어느 날부터 지구의 곤충들도 ‘익충’과 ‘해충’으로 분류되기 시작했고, ‘해충’으로 선별된 곤충들은 영문도 모른 채 박멸의 대상으로 놓였다. 해충을 효과적으로 제거하기 위해 200여 종의 기본적인 화학물질이 합성되었고, 수천 개의 제품으로 제조되어 스프레이와 분말, 에어졸 형태로 판매되었다.


카슨은 이러한 현상을 단순한 농업기술의 발전으로 보지 않았다. 인간이 특정 생명체를 ‘나쁜 것’으로 규정하고 과학적으로 완전 박멸하려는 사고방식에는 전쟁의 논리와 파시즘의 논리가 내재되어 있다고 보았다. 나치 독일이 인간을 ‘해충’으로 규정하고 치클론-B를 이용해 유대인을 학살했던 역사는 그 극단적인 사례였다.


DDT를 비롯한 많은 살충제 역시 화학전으로 치달았던 제1·2차 세계대전의 산물이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말라리아와 함께 독일군과 일본군까지 박멸되어야 할 해충에 비유되면서 해충 박멸이 인류의 미래를 위한 진보와 정의의 길인 것처럼 미화되었다.


DDT는 말라리아를 일거에 해소할 수 있는 마술 같은 물질로 칭송받았다. 그러나 카슨이 지적한 문제는 살충제가 인간이 정한 ‘선악의 기준’을 현장에서 과학적으로 실천할 수 없다는 데 있었다. 살충제는 해충만을 골라 죽이지 않는다. 그것이 선택적이어서가 아니라 맹독성이기 때문에 죽이는 것이다.


살충제는 빗물과 함께 땅으로 스며들고 먹이사슬을 따라 식물에서 초식동물로, 다시 육식동물로 이동한다. 생태계 안에서 독성 물질은 계속 순환하며 결국 인간에게도 돌아온다.


더욱 심각한 것은 곤충들이 살충제에 적응한다는 사실이었다. DDT의 사용이 확대되면서 살충제에 살아남은 곤충들이 내성을 가진 개체로 진화했고, 인간은 다시 더 강한 독성 물질을 개발했다. 그러면 곤충은 또다시 적응했다.

살충제와 곤충 사이에는 끝없는 따라잡기가 시작된 것이다.


카슨이 말한 것처럼 이 화학전에는 승리가 없다. 인간은 해충을 없애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생태계 전체를 전쟁터로 만든다. 카슨은 이를 ‘자연 통제’라는 인간의 오만과 연결했다.

“곤충을 향해 겨눈 이 무기들이 사실은 지구를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가장 우려스러운 불행이다.”


인간은 다른 생명체처럼 주어진 서식처에 적응하기보다 자신의 편의와 이익을 위해 서식처 자체를 바꾸려 한다. 카슨은 바로 이 욕망의 근저에 현대문명의 파괴성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살충제와 핵무기는 서로 전혀 다른 무기처럼 보이지만, 인간의 사고방식에서는 닮은 점이 있다. 해로운 상대를 규정하고 그것을 완전히 박멸하려는 전술, 대상을 가리지 않고 투하되어 주변 생태계까지 파괴한다는 점, 그리고 일단 사용된 독성 물질과 방사능이 생태계의 순환 속에서 장기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1950년대 미국 농무부가 매미나방을 ‘완전 박멸’ 대상으로 지정하고 수백만 에이커에 살충제를 살포한 사례도 마찬가지였다. 매미나방이 사라지지 않자 이번에는 불개미가 박멸 대상으로 지목됐다. 9개 주 2천만 에이커에 살충제가 살포되었지만 역시 완전 박멸에는 실패했다.


문제는 박멸에 실패했다는 사실만이 아니었다. 인간이 자연의 일부를 임의로 ‘악’으로 규정하고 그것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다고 믿는 사고방식 자체가 문제였다.

그래서 카슨에게 살충제 문제는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현대문명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해도 되는가를 묻는 윤리의 문제였다.

아일랜드의 시인 예이츠는 절제할 줄 모른다면 그것은 문명이 아니라고 했다. 카슨이 살충제와 핵무기에서 발견한 것도 바로 현대문명의 절제되지 않은 파괴적 욕망이었다.


결국 『침묵의 봄』은 살충제의 위험성을 알리는 환경서적을 넘어선다. 그것은 인간이 자연의 지배자가 아니라 자연이라는 거대한 생명의 그물 안에 존재하는 하나의 생명체임을 일깨우며, 자연을 통제하려는 인간의 오만이 결국 인간 자신을 향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카슨은 자신이 가장 존경했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과 『시민 불복종』의 사상적 길 위에 서게 된다.





우리가 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해도 되는가.


인간이 지구를 떠날 수 있는 기술을 얻는 동안, 정작 자신이 살아가는 지구를 이해하는 감각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

카슨이 『침묵의 봄』을 통해 우리에게 남긴 질문은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질문은 오늘의 인공지능과 생명공학, 기후위기와 우주개발의 시대에도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인간은 지구를 떠날 수 있는가. 그보다 먼저 물어야 할 것은 이것인지도 모른다.

인간은 자신이 살아가는 지구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최용대의 실용 인문학 2』인문 환경학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실용 인문학은 지식을 삶에 활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무엇을 해도 되는가!를 판단하는 힘을 길러주는 학문이다. 과학과 기술이 만들어낸 지식을 어디까지 사용해야 하는지, 그 선택이 인간과 생명, 사회와 자연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성찰하고, 그 과정에서 올바른 윤리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근거와 대안을 마련하는 것. 이것이 『최용대의 실용 인문학 2』가 말하는 인문학의 실천적 학문의 역할이다.



2부에서 계속...





🌿 목차



행동하는 지성인 최용대의 실용 인문학2 세상의 질서를 인문학의 창으로 통합해 보기 추천사 심재홍  행위예술작가/ 박상봉  시인 기자 작가/ 전영진  시인 평론가 /프롤로그 존중의 온도 나를 믿어준 두 사람 / 1부 인문학  길 잃은 시대의 지도 님의 소재(所在)와 진정한 역사(歷史)/ 요 순이란 무엇인가/ 스승과 제자/ 한강, 문학과 역사 평론 /다시 이 봄날에 /지식인과 염치/ 사람임으로부터의 자유 /고향으로 돌아가는 세 개의 사다리/ 2부 인문 사회학 / '우리'라는 이름의 연결망 / 분단시대의 사회학 프롤레타리아계급의 윤리적 태도/ 3부 인문정치 /권력과 자유의 균형점 / 한국의 대통령중심제와 민주주의/ 시민의회는 민주정치를 담보하는가/ 삶으로서의 민주주의-자급과 공생의 정치/ 정치에서 도덕적 제 가치의 보존/ 4부 인문경제 /시장에 투영된 인간의 욕망/  인류세의 경제학/ 낭비가 없는 경제/ 5부 인문과학 /관찰과 증명의 역사 / 게놈, 생명의 지도인가 인간 종의 역사인가/ 21세기 과학기술의 특징 인터넷, 생명공학, 에너지 기술을 중심으로/ 21세기 과학, 낙관과 비관 사이 /  6부 인문철학/ 생각의 탄생과 존재의 이유  /수선화, 있되 없고 없되 있으니/ 인간과 사회, 함께 살아가는 법 /죄는 어디에서 오는가 /금지된 학문으로 시대와 불화하다/ 동학과 한국인의 공복사 이고득락(離苦得樂)을 학습하다 /우면산 여름날의 기원/ 7부 인문종교/ 신념의 역사와 인간의 구원 /네로의 세상, 지식인의 초상페트로니우스/ 함석현의 민족적 정체성 /로마제국과 바울의 평등사상/ 8부 인문환경 /자연의 목소리와 인간의 책임/ 〈침묵의 봄〉과 카슨의 시적 감수성 /9부 《서평》 /시대를 비추는 책, /미래를 여는 사유 위대한 어머니의 삶(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평전)/ 유토피아에의 열정-윌리엄 모리스/ 자본주의의 극복과 토지공유제 〈추이즈위안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 선언〉 /산업경제에서 삶터경제로. -프레드 블록   〈삶터를 책임지는 사회〉,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한국매일뉴스
등록번호인천 아 01909
등록일자2025-07-05
오픈일자2025-07-05
발행일자2026-08-17
발행인최용대
편집인이원희
연락처010)8834-9811
FAX031)781-4315
이메일hangukmaeilnews@naver.com
주소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 274-3.일심빌딩 302호 031-781-9811.
한국매일뉴스

한국매일뉴스 © 한국매일뉴스 All rights reserved.

한국매일뉴스의 모든 콘텐츠(기사 등)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