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장소 ㊷] 윤동주를 일본 교과서에 싣게 한,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

박상봉 사회부장 기자

등록 2026-08-15 08:51

mbc 드라마《내가 가장 예뻤을 때》한 장면.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이바라기 노리코

 

  내가 가장 예뻤을 때

  거리는 와르르 무너져 내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푸른 하늘 같은 것이 보이곤 하였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주위 사람들이 무수히 죽었다

  공장에서 바다에서 이름도 없는 섬에서

  난 멋 부릴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아무도 다정한 선물을 건네주지 않았다

  남자들은 거수경례밖에 모르고

  해맑은 눈길만을 남긴 채 모두 떠나갔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내 머리는 텅 비어 있었고

  내 마음은 굳어 있었고

  손발만이 밤색으로 빛났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내 나라는 전쟁에 패했다

  그런 어이없는 일이 있단 말인가

  블라우스 소매를 걷어붙이고 비굴한 거리를 활보하였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라디오에서 재즈가 넘쳐흘렀다

  금연을 깨뜨렸을 때처럼 어질어질하면서

  난 이국의 달콤한 음악을 탐하였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난 몹시도 불행했고

  난 몹시도 엉뚱했고

  난 무척이나 쓸쓸했다

 

  그래서 결심했다 가능하면 오래 살기로

  나이 들어 무척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

  프랑스의 루오 영감님*처럼

  말이지

 

  (*프랑스 화가 겸 판화가 조르주 루오, G. Rouault 1871~1958)

윤동주를 일본 교과서에 싣게 한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의 젊은 시절. 

  이바라기 노리코의 시 ‘내가 가장 예뻤을 때’는 시의 여러 요소 중 하나인 ‘아이러니’를 담고 있다. 서로 갈등을 일으키며 모순, 충돌하는 두 개의 시어를 한 문맥 속에 엮어내는 수사법이다. 반어(反語)라고도 한다. 전쟁으로 무수한 젊은이가 죽어갔을 때, 역설적이게도 ‘내가 가장 예뻤을 때’다.


이바라기 노리코는 한국과 한국어, 그리고 윤동주와 윤동주의 시를 사랑했던 일본의 전후세대 여성 시인이다. 세상을 떠난 지 17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일본인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는 시인이다. 


여성, 인종, 종교 등 세상에 존재하는 편견에 맞섰던 반전주의자로 일본에 윤동주와 윤동주의 시를 알리는데, 대단히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의 대표적인 시 ‘내가 가장 예뻤을 때’는 반전시임에도 불구하고 밝고 유쾌한 어조가 뛰어나 감동과 여운이 더 큰 시이다.


윤동주의 시가 실린 일본 교과서 이야기를 소개한 EBS 지식채널.시인 이바라기 노리코(茨木のり子·1926~2006)는 오사카 출신 의사인 아버지의 근무지를 따라 유년 시절, 교토와 아이치(愛知)현 등지에서 성장했다. 1945년 일본 패전 당시 19세에 시를 쓰기 시작했으며, 제국주의에 대한 반발과 전쟁의 비극을 응시한 글을 주로 썼다.


그는 윤동주(1917~1945)보다 9살 아래다. 중국 길림성 화룡현 명동촌(현재 지린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 룽징시)에서 개신교 장로이며 교사 집안에서 태어난 한국의 시인 윤동주와는 생전에 서로 이름도 옷깃도 스친 적이 없다.


그는 식민지 청년 윤동주의 청아하고 맑은 모습에 반했다고 전한다. 그 후 일본어로 번역된 윤동주의 시를 찾아 읽었다. 훗날 노리코는 저서 《하나의 줄기 위에》에서 윤동주를 이렇게 기억했다.


“1945년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27세의 나이로 옥사(獄死)한 사람. 옥사의 진상도 의문이 많다. 일본의 젊은 간수는 윤동주가 사망 당시 큰 소리로 비명을 질렀다고 했다.”

 1945년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27세의 나이로 옥사한 시인 윤동주.

1944년 사촌인 송몽규가 교토 조선인 학생민족주의 그룹 사건으로 체포된 뒤, 윤동주도 잇따라 구속됐다. 1945년 2월16일 윤동주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숨졌다.


1980년 현대문학 5월호에 한국문학을 전공한 일본인 고노 에이치는 ‘‘윤동주와 송몽규가 혈액대체 실험을 위한 인체재료로 쓰여 사실상 살해당했다’’는 요지의 글을 기고했다. 2000년 미국 국립도서관 기밀해제 문서 가운데 1948년 일본 전범재판 관련 문서에서 이 사실이 좀 더 구체적으로 확인된다. 


당시 규슈제국대학이 대체혈액 개발을 위해 후쿠오카 형무소 재소자들을 상대로 생체실험을 벌였으며 그들에게 생리식염수 대체용액을 수혈했다는 내용이다. 윤동주는 당시 고문을 당한 일이 알려져 있지 않기에, 생체실험이 사인(死因)으로 추정된다.


영화《동주》의 한 장면

윤동주 시인이 일본의 감옥에서 죽고 6개월 뒤 우리나라는 일본으로부터 독립을 했다. 윤동주와 같은 감옥에서 1800명의 한국인이 의문의 주사를 맞고 사망하였고 시신으로 무슨 짓을 했는지 알수가 없다고 한다.


윤동주의 사필시집은 사후 하숙집 친구였던 정병욱이 보관하고 있다가 동생 윤일주와 함께 1948년에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정음사)라는 제목으로 출간된다. 

 

윤동주 시인의 유고 시집『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990년 일본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윤동주 시가 인용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정확하게 말하면, 윤동주의 시를 담은 일본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의 수필 ‘한글로의 여행’이라는 책이 실린 것이다. 


이바라기조차도 그 에세이가 교과서에 실리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일본 제국주의 희생자 시인의 이야기가 일본 당시 문부성 검정을 통과하는 일이 과연 가능하겠느냐는 회의에서였다. 그러나 일본에서도 진실을 원하는 사람들은 있었고 그 일이 이뤄졌다. 이바라기 노리코는 그의 글에서, 비명(非命)에 요절한 천재 윤동주에 대해 국경도 시간도 초월한 애정의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바라기는 윤동주의 사진을 보고 한 눈에 반했다는데 뒷줄 오른쪽이 윤동주 시인이다.

그는 윤동주의 사진을 보고 한 눈에 반했다는 고백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고 한국의 소재로 한 시 ‘칠석’을 발표하기도 한다. 이런 활동이, 일본 내에서 윤동주의 시와 삶의 서사가 감동과 충격으로 뿌리내리게 하는 힘이 되었다. 일본에는 윤동주 시 연구모임이 아직도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이바라기는 일본에서 사랑받는 대시인이다. 윤동주와의 인연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그의 시는 단박에 사람을 사로잡는 직관과 소박의 미가 있다. 시가 어떤 것을 꾸며 말하려는 수식의 문장이라고 여겨온 이들에게는, 그의 시는 그 꾸밈을 털어내고 단도직입으로 말하는 것이 얼마나 시적이고 감동적인지를 깨닫게 한다. 꼭 필요한 말, 아니 문득 던진 듯한 말 속에 저절로 생겨나는 중요함 같은 것들. 가벼운 말이 화두가 되고, 쉽게 반복하는 말이 함부로 꺼내기 어려운 생각의 실마리가 되는 것을 그는 시원시원하게도 보여준다. 


이바라기 노리코 시인


얼굴


이바라기 노리코 


남자도 있고

개똥지빠귀 눈을 한 노파도 있고

원숭이를 닮은 사람은 쌔고쌨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은

머나먼 여행길

아득하고 긴긴 노정

그 끝에서 한 순간 피어나는 것이다


네 얼굴은 조선사람 같아 선조는 조선인이겠지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눈을 감으면 본 적도 없는 조선의

맑고 깨끗한 가을 하늘

그 청명한 푸르름이 펼쳐진다

아마도 그렇겠죠 나는 그렇게 대답한다


물끄러미 날 바라보며

네 선조는 파미르 고원에서 왔어

딱 잘라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눈을 감으면

간 적도 없는 파미르 고원 목초에서

풀 냄새가 일고

아마도 그렇겠죠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윤동주 시인별을 헤는 밤


윤동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헬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佩), 경(鏡),

옥(玉) 이런 이국(異國)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잼',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北間島)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나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박상봉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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