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우소 (解憂所)
정랑에서
한 근심 풀었다만
풀리지 않는
말할 수 없는
내 속 근심 어떡해
/ 권 비오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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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우소(解憂所)’는 글자 그대로 하면 근심을 푸는 곳이다. 본래 사찰에서 화장실을 이르는 말이지만, ‘근심을 푼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 단순한 생리적 배설 공간 이상의 상징성을 지닌다.
“정랑에서 / 한 근심 풀었다만”
으로 시작한다. 정랑에서 볼일을 보고 나면 몸은 한결 가벼워진다.
먹는 일이 삶의 시작이라면 배설은 삶을 지속하기 위한 자연의 순환이다. 먹고 배설하는 일이 원활해야 하루가 편안하듯, 인생 또한 마음속에 쌓인 것을 적절히 내려놓을 수 있어야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시인은 곧바로 방향을 틀어 놓는다.
“풀리지 않는 / 말할 수 없는 / 내 속 근심 어떡해”
육신의 근심은 화장실에서 해결할 수 있지만, 마음의 근심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 마지막 부분에서 작품의 무게중심은 ‘해우소’라는 공간에서 인간의 내면으로 이동한다.
인간은 누구나 속 근심 몇 가지는 안고 살아 가는 게 일상이 아닐까 싶은 데 ᆢᆢ
여기서 ‘말할 수 없는’이라는 표현이 특히 중요하다.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남에게 털어놓기 어려운 사연이 있다.
가족에게도, 친구에게도, 때로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조차 말하지 못하고 가슴 한편에 묻어두는 근심이다. 몸은 시원하게 비웠는데 마음은 여전히 가득 차 있는 역설이다.
이 작품의 묘미는 바로 이 ‘몸의 배설’과 ‘마음의 배설’의 대비에 있다. 화장실에서는 몸속의 것을 내려놓으면 되지만, 마음속 근심은 내려놓을 장소가 마땅하지 않다.
그래서 마지막의 “어떡해”는 단순한 푸념이 아니다. 그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품고 있는 내면의 고독과 해소되지 않는 마음의 응어리를 대변한다.
그렇다면 마음의 해우소는 어디에 있을까.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말 한마디일 수도 있고, 종이 위에 써 내려가는 글일 수도 있으며, 시를 쓰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때로는 자연을 바라보며 침묵하는 것, 오래된 친구와 차 한잔 나누는 것, 용서하지 못했던 사람을 마음에서 조금씩 내려놓는 것도 하나의 해우가 될 것이다.
결국 사람은 먹은 것만 잘 비워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마음에 쌓인 근심도 잘 비워야 하는 존재다.
이 시조는 해우소라는 소박하고 해학적인 소재를 출발점으로 삼아 ‘무엇을 먹느냐’ 못지않게 ‘무엇을 내려놓느냐’가 삶의 질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짧지만 여운이 깊다.
웃음으로 시작하여 삶의 철학으로 끝나는 작품이다.
몸의 해우는 화장실에서 이루어지지만, 마음의 해우는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뜻한 말과 이해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이 작품을 읽고 나면 이런 한 문장이 남는다.
“몸은 비워야 편안하고, 마음은 털어놓아야 가벼워진다.”
권오정 문화부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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