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년간 외면당한 피해, 법원 판결로 역사적 사실 확인"
법원 [연합뉴스TV 캡처]
(전남광주=연합뉴스) 정회성 민현기 기자 = 일제강점기 미쓰비시광업이 운영한 탄광에서 강제노역한 피해자들의 유족이 손해배상 소송 2심에서도 승소했다.
광주고법 민사2부(박정훈 고법판사)는 23일 일제강제동원 피해자 유족 6명이 미쓰비시 마테리아루 주식회사(옛 미쓰비시광업)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의 항소심에서 원심대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
재판부는 원고 3명에게는 1억원씩을, 나머지 3명에게는 상속분에 해당하는 1천176만∼1천666만원을 각각 배상하라고 주문했다.
이번 소송에는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 총 9명이 참여했으나, 소명자료 부족 또는 소멸시효 완성 등을 이유로 1심에서 패소한 3명은 항소를 제기하지 않았다.
승소한 피해자 측 가운데 고(故) 이상업 씨는 만 15세였던 1943년 전남광주 영암군에서 '영장'을 받고 미쓰비시광업이 운영하는 일본 후쿠오카현 가미야마다(上山田) 탄광에 끌려갔다.
이씨는 지하 1천m에서 석탄을 캐고 탄차를 미는 중노동에 약 2년간 시달려 심폐증을 앓았다.
1945년 해방 후 귀향한 이씨는 88세에 '사지를 넘어 귀향까지'라는 제목의 회고록으로 강제노역의 기억을 남겼고, 2017년 9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다른 피해자 고(故) 윤재찬 씨는 25세에 전남광주 곡성군에서 면장의 꼬드김에 강제동원됐다.
구타와 가혹행위에 시달린 윤씨는 조국이 해방된 줄도 모르고 1945년 12월까지 미쓰비시광업의 탄광에서 노역했다.
재판이 끝난 뒤 이상업 씨의 아들 이선희 씨는 기자들에게 "돌아가신 아버님을 생각하면, 우리가 끝까지 단합해 아픔을 해결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소회를 밝혔다.
윤채찬 씨의 막내아들 윤출호 씨도 "혹독한 징용을 견뎌낸 아버님의 한을 풀어드린 게 아닌가 싶다"고 이번 판결을 평가했다.
유가족 측 변호인은 "강제징용 사실을 모두 인정한 것은 1심 판결과 같지만, 위자료 부분만 상속 지분이나 법률상 관계 등 때문에 일부 금액이 감액됐다"며 "감액에 대한 대법원 상고 여부는 향후 판결문을 받아보고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소송을 지원한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의 이국언 대표는 "수십 년 동안 외면당했던 강제동원 피해를 법원 판결을 통해 역사적 사실로 확인하고, 일본 전범 기업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 자체가 큰 의미"라고 강조했다.
시민모임에 따르면 이번 소송의 피고 미쓰비시는 일본 정부의 강력한 지원 속에 군수산업체로 급성장하며 조선인 약 10만명을 강제동원한 것으로 추산된다.
일본 내 27개 작업장을 운영했고, 한반도 전역에서도 37곳의 탄광 및 군수공장을 운영했다.
이 가운데 나가사키 군함도(하시마 탄광)는 2015년 유네스코 산업 유산에 등재됐고, 니가타현 사도 광산도 2024년 7월 유네스코 산업유산에 등재됐다.
시민모임은 2019년 원고 54명이 미쓰비시중공업 등 일본 9개 전범 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이후 지금까지 총 15건의 집단소송을 지원했다.
15건 가운데 패소가 확정된 1건(스미세키홀딩스)을 제외한 14건(대법원 상고심 1건·항소심 9건·1심 4건)이 계류 중이다.
최용대 발행인/ 주필
기자
헤드라인 뉴스
한국매일뉴스 © 한국매일뉴스 All rights reserved.
한국매일뉴스의 모든 콘텐츠(기사 등)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