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장소㊿] 별나무 아래, 이원규를 다시 만나다

박상봉 사회부장 기자

등록 2026-09-23 20:53

문화살롱 쎄라비에서 이원규 시인이 독자들을 만났다

젊은 시절부터 자신을 사로잡은 시와 사진 이야기

결핵성늑막염을 모신 뒤에야 비로소 야생화가 보였다

  맹인의 아침


  이원규   


  산촌 하내리의 겨울밤

  자정 넘어 함박눈 내리면

  먼저 아는 이 누구일까

  제아무리 도둑발로 와도

  먼저 듣고 아는 이 누구일까


  온  마을 길들이 덮여

  문득 봉당 아래 까무러치면

  맹인 김 씨 홀로 깨어 싸리비를 챙긴다

  폭설의 삶일지라도 살아온 만큼은 길 아니던가

  밤새 쓸고 또 쓸다 보면

  맹인 김 씨 하얀 입김 따라 열리는 동구 밖


  비록 먼눈일지언정

  깜박이는 눈썹 사이 하내리의 아침이 깃들면

  맨 먼저 그 길을 따라

  막일 나가는 천 씨의 콧노래

  등교하는 아이들의 자전거 페달 밟는 소리


  비로소 맹인 김 씨 잠을 청한다


9월 22일 대구 문화살롱 쎄라비에서 이원규 시인이 독자들을 만났다.

이원규 시인의 작품 「맹인의 아침」은 1997년 창비에서 나온 시집 『돌아보면 그가 있다』 제1부에 수록되어 있다.  이후 2015년 육필시집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에도 시인이 직접 가려 뽑은 52편 가운데 다시 수록됐다. 


어제 저녁, 대구 문화살롱 쎄라비에 이원규 시인이 섰다.


‘누구나 시인이자 사진가다.’

그의 뒤에 걸린 현수막의 문장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대구 이육사기념사업회가 마련한 2026년 ‘작가와의 만남’ 9월 초대작가는 ‘지리산 시인’ 이원규였다. 기타와 마이크가 놓인 작은 무대, 객석과 불과 몇 걸음 떨어진 자리에서 그는 시와 사진, 지리산과 섬진강, 야생화와 별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누구나 시인이자 사진가다’라는 말은 그의 삶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했다. 그는 시를 쓰기 위해서만 지리산에 간 것도 아니고 사진을 찍기 위해서만 산길을 떠돈 것도 아니다. 살다 보니 시가 되었고, 걷다 보니 꽃을 만났고, 밤을 견디다 보니 별이 사진 속으로 들어왔다.


이원규 시인은 젊은 시절부터 자신을 사로잡은 시와 10년 넘게 몰입해 온 사진 이야기를 영상과 함께 풀어놓았다.


이원규 시인은 자신의 ‘시의 스승’으로 고향 문경시 마성면 하내리의 ‘맹인 아저씨’를 꼽았다.

이원규 시인은 자신의 ‘시의 스승’으로 고향 문경시 마성면 하내리의 ‘맹인 아저씨’를 꼽았다. 대학 시절 어느 눈 오는 새벽, 다락방에서 내려다보니 앞을 보지 못하는 동네 가게의 김 씨 아저씨가 싸리비를 들고 동구 밖까지 눈을 쓸고 있었다고 했다.


정작 자신은 그 눈길을 밟고 어디 갈 일도 없었다. 그러나 밤새 눈을 치워 놓으면 새벽 막일을 나가는 천 씨가 콧노래를 부르며 그 길을 걸었고, 등교하는 아이들은 자전거 페달을 밟아 마을을 빠져나갔다. 앞을 보지 못하면서도 지나가는 사람의 발소리와 오토바이 소리만으로 누구인지 알아차리던 사람. 그 기억이 훗날 「맹인의 아침」이 되었다.


자신은 걷지 않을 길을 밤새 쓸어 다른 사람에게 길을 내어주는 사람. 어쩌면 이원규가 그에게서 처음 배운 시도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이원규 시인은「달빛을 깨물다」를 박순희 낭송가가 낭송한 영상을 소개하고 가난했던 시절의 부모 이야기를 꺼내 객석이 잠시 숙연해졌다.

이어 화면에는 그의 사진들이 펼쳐졌다. 자신의 시 「달빛을 깨물다」를 박순희 낭송가가 낭송하는 영상을 소개했고, 고향 마성면 하내리에서 도탄재를 넘어 가은읍 은성광업소의 경석 더미에서 석탄을 골라오던 어머니와 아버지 이야기를 꺼냈다. 가난했던 시절의 부모 이야기에 객석도 잠시 숙연해졌다.


이야기는 다시 지리산의 들꽃으로 옮겨갔다. 지리산을 몇 바퀴씩 돌면서도 미처 보지 못했던 작은 꽃들이 어느 순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야생화 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오래 찍다 보니 또 하나의 질문이 생겼다고 했다.


남들과 똑같이 찍어서 무엇하나.

그래서 시선은 땅의 꽃에서 하늘의 별로 올라갔다. 지금 그가 밤을 새워 찍고 있는 ‘별나무’도 그렇게 태어났다.


나는 객석에 앉아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문득 45년 전으로 돌아갔다. 1981년 계명대학교 노천문학회에서 처음 만났을 때 우리는 젊었다. 그 무렵 우리는 시가 세상을 바꿀 수도 있으리라 믿었던 것 같다. 당시 계명대 강사로 대구에 내려와 있던 이성복 시인을 함께 만났고, 황지우 시인을 초대해 문학강연을 열었다. 교정에서 시화전도 펼쳤다.


시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기나 했을까. 다만 시를 좋아했고, 시 때문에 사람을 만났고, 시를 핑계 삼아 밤늦도록 함께 어울렸다. 그렇게 맺어진 인연이면 오래 갈 수 있다고 믿었던 시절이었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 청년이 훗날 서울의 신문사 편집국을 떠나 지리산으로 들어가 꽃과 별을 찍으며 시를 쓰게 될 줄을. 그리고 마흔다섯 해 뒤, 내가 다시 객석에 앉아 그의 꽃과 별 이야기를 듣게 될 줄을.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들판에서 이원규 시인과 필자가 함께 찍은 사진

이원규 시인은 지리산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에서 신문사 편집국이라는 괜찮은 직장을 무작정 때려치우고 지리산으로 들어간 지 어느덧 사반세기가 훌쩍 넘었다. 빈집을 옮겨 다니며 거처를 삼았고, 시를 쓰고 야생화를 찍고 별을 기다렸다.


세속의 셈법으로 말하자면 돈 되지 않는 일만 골라 하며 살아온 셈이다. 대신 그는 남들이 갖지 못한 것을 가졌다. 지리산의 새벽과 섬진강의 물소리, 아무도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 풀꽃과 빛 공해를 피해 산속으로 숨어드는 별빛 같은 것들이다.


그는 야생마처럼 모터사이클을 타고 지리산과 전국을 떠돌았다.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와 맞먹는 38만km 이상을 달렸다고 한다. 때로는 별 사진 한 장을 건지기 위해 빛 하나 없는 산속으로 들어가 밤새 몸을 낮추고 기다렸다.


사진 한 장을 기다리는 일이 한 편의 시를 기다리는 일과 무엇이 다를까. 그렇게 기다린 밤 가운데는 지상의 별과 천상의 별이 만나는 순간도 있었다. 반딧불이가 날아오르고 그 위로 별들이 쏟아지는 밤. 그는 그것을 오래 바라보았다. 하늘의 별과 땅의 별이 서로의 안부를 묻는 순간이었다.


포토에세이 『나는 지리산에 산다』에는 그런 시간들이 들어 있다. 그의 사진은 별처럼 빛나고 글은 야생화처럼 소박하다. 문학평론가 하응백의 말처럼 이원규가 해온 일은 어쩌면 지구와 우주의 주인공인 꽃과 별을 잠시 ‘염탐’하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사람이 오기 전에도 꽃은 피었고 별은 떴다.

우리가 모두 떠난 뒤에도 그럴 것이다. 지리산도 그 자리에 있을 것이고 섬진강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흘러갈 것이다. 사람의 한 생애가 그 사이 잠깐 머물다 가는 것이라 생각하면 우리가 그토록 크게 여겼던 일들도 조금은 작아진다.


이원규의 시와 사진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까닭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처음부터 작은 꽃들이 보였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10여 년 동안 도보순례와 삼보일배, 오체투지를 이어가다 결핵성늑막염을 앓았다. 몸이 무너지고서야 비로소 키 낮은 풀꽃들이 눈에 들어왔다고 했다.


“아직 젊을 때는 몰랐다 몸이

아픈 뒤에야 비로소 야생화가 보였다”


「동네시인 만세」의 이 두 행은 그의 삶을 압축해 보여준다.


큰 것을 향해 걸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이 몸을 낮추자 보였다. 목련이나 복사꽃보다 먼저 땅바닥 가까이에서 피어나는 작은 꽃들. 그늘이든 양지든, 산정이든 바닷가든 제자리에서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으며 수천 년을 살아온 야생화 앞에서 그는 경외를 배웠다.


“야생화와 별들이 나를 살렸다”는 그의 말은 그래서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그와의 오랜 인연은 내 시집에서도 이어졌다.


내 두 번째 시집 『불탄 나무의 속삭임』을 만들 때였다. 표제시와 어울리는 표지 이미지를 찾다가 문득 이원규의 ‘별나무’가 떠올랐다. 밤하늘을 배경으로 나무가 별을 피워 올리는 듯한 사진이었다. 지상의 나무가 우주의 별을 제 꽃처럼 달고 있는 풍경.


연락을 했더니 그는 망설임 없이 사진을 보내주었다. 그렇게 지리산의 밤 한 조각이 내 시집의 얼굴이 되었다.


필자의 두 번째 시집『불탄 나무의 속삭임』표제시와 어울리는 이미지를 찾다가 이원규의 ‘별나무’를 보고 연락했더니 망설임 없이 바로 사진을 보내줘 시집의 얼굴이 되었다.

필자의 네 번째 시집『불 꺼진 너의 단어 곁에서』표지에도 이원규 시인의 작품 ‘몽유운무화-꽃무릇’을 실었다.인연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네 번째 시집 『불 꺼진 너의 단어 곁에서』에도 그의 작품 ‘몽유운무화-꽃무릇’을 실었다. 안개와 꽃무릇이 서로의 경계를 지우며 번져가는 사진 덕분에 책은 연분홍빛의 산뜻한 장정을 얻었다.


생각해 보면 내 시집 두 권의 얼굴에 이원규가 바라본 지리산이 들어와 있는 셈이다. 한 권에는 별이 있고, 한 권에는 꽃이 있다. 별과 꽃 사이로 우리의 세월도 흘렀다.


문경에서 태어나 시인이 된 이원규는 『달빛을 깨물다』, 『옛 애인의 집』, 『돌아보면 그가 있다』 등의 시집과 『멀리 나는 새는 집이 따로 없다』 등의 산문집을 냈고, 사진 작업도 꾸준히 이어와 포토에세이 『나는 지리산에 산다』를 펴내 시진작가로 주목 받기도 했다. 신동엽창작상과 평화인권문학상을 받았지만, 그런 약력보다 내가 아는 이원규에게 더 잘 어울리는 이력은 따로 있다.


지리산에 살았다는 것.

섬진강을 오래 바라보았다는 것.

38만km 넘게 모터사이클을 달렸다는 것.

몸이 아픈 뒤 작은 꽃을 발견했다는 것.

그리고 별 하나를 만나기 위해 캄캄한 산속에서 밤을 새웠다는 것.


지금 그는 ‘지리산 앉고 섬진강 참 긴 소리’가 귓전에 들리고, 매화 폭발 자욱한 백화산 토끼재 오르는 길목 즈음에 예술곳간 한 채를 마련해 살고 있다.


섬진강을 건너 지리산을 마주 보는 백운산 토끼재 들머리, 그곳에 이원규 시인의 예술곳간 ‘몽유’가 있다.

멀리 나는 새는 집이 따로 없다더니, 오래 떠돌고 난 뒤 그에게도 집이 생겼다.


행사가 끝나고 다시 현수막을 바라보았다.


‘누구나 시인이자 사진가다.’


45년 전에는 우리 둘 다 시를 붙들고 있었다. 그 뒤 그는 지리산으로 들어가 별을 찍었고, 나는 내가 사는 자리에서 시를 썼다. 그가 찍은 ‘별나무’는 내 두 번째 시집 『불탄 나무의 속삭임』의 얼굴이 되었고, ‘몽유운무화-꽃무릇’은 네 번째 시집 『불 꺼진 너의 단어 곁에서』의 얼굴이 되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참 오래 그의 시와 사진 속을 들락거렸다. 1981년 계명대학교 노천문학회에서 만났던 청년을 지나 이제 서로의 흰 머리를 바라볼 나이가 되었다. 한 사람은 지리산으로 갔고 한 사람은 이곳에 남았다. 서로 다른 길을 걸었지만 시라는 길에서는 이상하게 몇 번이고 다시 만났다.


이원규가 지리산에서 별 하나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내 자리에서 한 줄의 시를 기다렸을 것이다. 그가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순간과 내가 한 단어를 지우고 다시 쓰는 순간은 어쩌면 그리 멀리 떨어진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꽃 한 송이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몸을 낮춰야 하고, 별 하나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불을 꺼야 한다. 시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쎄라비에서 돌아오는 길, 오래전 그의 별나무를 생각했다. 사람은 늙어가지만 별은 늙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꽃은 해마다 지면서도 다시 처음 피는 얼굴로 돌아온다.


1981년에서 2026년까지 45년.

돌아보면 참 길고 긴 ‘뜨신 끈’이다.

그 끈은 아직도 따뜻하다.


돌아보면 참 길고 긴 ‘뜨신 끈’ 같은 사이 이원규 시인을 지난해 6월 정윤천 시인 북토크를 진행했던 전라남도 화순의 산아래 詩 책방에서 만났다.

박상봉 사회부장

박상봉 사회부장

기자

한국매일뉴스
등록번호인천 아 01909
등록일자2025-07-05
오픈일자2025-07-05
발행일자2026-09-24
발행인최용대
편집인이원희
연락처010)8834-9811
FAX031)781-4315
이메일hangukmaeilnews@naver.com
주소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 274-3.일심빌딩 302호 031-781-9811.
한국매일뉴스

한국매일뉴스 © 한국매일뉴스 All rights reserved.

한국매일뉴스의 모든 콘텐츠(기사 등)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