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스승의 날, 꽃 한 송이의 의미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등록 2026-05-15 12:11




오늘은 스승의 날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교문 앞에 카네이션이 쌓이고, SNS에는 감사의 문구들이 넘쳐흐른다. 그러나 그 의례적 인사 뒤에서 우리는 정작 중요한 질문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에게도 스승이 있고 나도 누군가의 스승이기도 하다. 스승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는 지금 그 이름에 걸맞게 살고 있는가.


'스승'이라는 말의 뿌리는 생각보다 깊다. 무격(巫覡), 즉 고대 사회의 영적 지도자를 가리키던 말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고, 불교의 사승(師僧)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두 계보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스승이란 지식 전달에 앞서 '먼저 태어난 사람'이라는 뜻의 선생(先生)이 앎의 순서를 의미한다면, 스승은 삶의 지도자를 의미한다. 길을 안다는 것과 길을 이끈다는 것, 그 사이의 간격은 언제나 작지 않았다.


'스승의 날' 탄생은 1958년, 충남 강경여자고등학교 청소년적십자단원들이 병환 중인 선생님을 찾아간 것이 발판이었다. 어떤 제도도 없이 오직 제자들의 스승을 향한 존경의 마음이 먼저였다. 그 마음이 전국으로 번졌고, 1965년에는 세종대왕의 탄신일인 5월 15일로 날짜를 옮겨 오늘에 이른다. 세종을 이 날의 상징으로 삼은 것은 훈민정음의 서문을 다시 읽어보면 알 수 있다. 세종은 친히 쓴 서문에서 백성이 말하고자 해도 끝내 제 뜻을 펴지 못하는 현실을 '어엿비 너겨', 즉 가엾이 여긴다고 했다. 베푸는 자의 시혜가 아니라, 함께 아파하는 자의 연민에서 출발한 말이었다. 세종이 문자를 만든 것은 지식으로부터 소외된 이들에게 스스로 말할 수 있는 힘을 주기 위해서였다.


교육이란 소수의 전유물로 국한되기 보다 모두를 향한 헌신이어야 한다는 그 정신이 이 날을 기념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교육 현장은 어떤가. 교권 침해 사례는 해마다 기록을 갱신하고, 교사들은 가르치는 일보다 자신을 지키는 일에 더 많은 에너지를 쓴다고 토로한다. 스승의 날이 오히려 교사들에게 부담과 씁쓸함으로 다가온다는 고백도 낯설지 않다. 감사를 전하는 날이, 역설적으로 감사받지 못하는 현실과 교육현장의 애로점이 보도를 통해 더 많이 들려오는 날이 되어버린 것이다.


AI가 지식의 총량을 무한히 제공하는 시대가 되었다. 어떤 사실도, 어떤 정보도 검색 한 번이면 쉽게 접한다. 이 변화는 선생의 역할을 묻는 동시에, 역설적으로 스승의 가치를 더욱 부각시키게 한다. 데이터는 복제할수 있다. 다만 지혜는 삶의 관계 속에서 습득되어진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란 옛것을 익혀 새것을 안다는 뜻이지만, 그 온기는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만 생겨난다. 스승은 지식 이전에 자세를 가르치고, 방법 이전에 방향을 보여주는 존재다. 어떤 알고리즘도 아직 그것을 대신하지 못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스승은 반드시 교단 위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 

올바른 태도를 가르쳐준 부모가, 혹은 오래전 읽은 책 한 권의 저자가 우리에게는 스승이었을지 모른다. 스승이란 관계 속에서 비로소 발견되는 우리라는 이름이다.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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