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를의 카페 테라스에 앉아 있으면
한 장의 그림이 아니라 한 시대의 교차를 보는 셈
서양 회화의 밤을 바꾸어 놓은 고흐 그림
The Great Figure
William Carlos Williams
Among the rain
and lights
I saw the figure 5
in gold
on a red
firetruck
moving
tense
unheeded
to gong clangs
siren howls
and wheels rumbling
through the dark city
비와/ 불빛 가운데/ 나는 어두운 도시를 지나가는/ 강렬하게/ 움직이며/ 아무도 듣지 않는/ 징이 쨍그렁대고/ 사이렌이 울부짖고/ 바퀴들이 요란히 굴러가는/ 빨간/ 소방차 위에/ 황금빛/ 숫자 5를 보았네.
미국의 시인이자 의사였던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William Carlos Williams,1883~1963)의 「The Great Figure」라는 13행의 한 문장짜리 이 시는 빈센트 반 고흐의 회화와 동질성을 가진다.
이 시에서 “빛과 어둠의 충돌”은 고흐의 노랑과 파랑 이미지와 일치하고, “움직이는 도시의 순간 포착”은 카페 테라스의 밤을 떠올린다. 밤은 언제나 다른 나라에서 건너온다. 아를의 포룸 광장에 걸린 노란 불빛 아래서, 우리는 유럽의 밤 풍경을 본다고 믿지만, 그 깊은 푸름의 결은 이미 일본을 지나온 색이다.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Cafe Terrace, Place du Forum, Arles(아를의 포룸 광장의 카페 테라스, 1888)〉우리에게 〈밤의 카페 테라스〉로 유명한 이 그림의 정확한 제목은 〈Cafe Terrace, Place du Forum, Arles(아를의 포룸 광장의 카페 테라스, 1888)〉다.
고흐의 작품 중 가장 인기가 높은 것으로 서양 회화의 밤을 바꾸어 놓은 그림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우키요에를 표절한 것이라는 말도 있다.
〈아를의 포룸 광장의 카페 테라스〉를 그리기 1년 전, 고흐는 테오로부터 파리의 몽마르트에서 화방을 경영하고 있던 줄리앙 프랑수아 탕기를 소개받았다.
프랑스 미술사에서 가장 유명한 화구상인 탕기 아저씨는 팔리지 않는 고흐의 그림을 받고 그에게 물감을 대준 사람이다. 고흐가 탕기에 대해 얼마나 고마운 마음을 가졌지 그를 그린 석 점이나 되는 초상화를 보면 짐작이 가능하다.
탕기 아저씨는 반 고흐가 그린 석 점의 초상화 모델이었을 뿐 아니라, 에밀 베르나르 그림의 모델이기도 하다. 아마 미술의 역사 이래 이렇게 유명한 두 화가가 그림을 그려준 화구상은 없을 것이다.

탕기 아저씨의 초상 고흐(위) 에밀 베르나르(아래)
그런데 고흐가 그린 〈탕기 아저씨의 초상〉 배경을 보면 온통 왜색 짙은 우키요에로 도배되어 있다. 탕기가 자신의 화방 겸 화실에 우키요에를 다량 소장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시절 파리에는 일본풍을 즐기고 선호하는 자포니즘 열풍이 불고 있었던 것이다.
고흐는 탕기를 통해 우키요에를 접하고 단숨에 매료된다. 그중에서도 특히 우타가와 히로시게의 작품을 좋아해 그의 작품 여럿을 모사했다.
이렇게 모사를 통해 연습하면서 완성한 그림이 〈아를의 포룸 광장의 카페 테라스〉다. 히로시게의 〈사루와카 거리의 밤 풍경(1857)〉과 구도와 소재, 채색 등 많은 면에서 흡사할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히로시게의 그림 속에서 거리를 거니는 많은 사람들, 짙은 남색으로 펼쳐진 밤하늘, 하얀 보름달, 창 너머로 비치는 노란 불빛 등은 고흐의 그림에서 카페 테라스에 앉아 있는 사람들, 파란 밤, 하얀 별, 커다랗고 노란 가스등으로 매우 비슷하다.
요즘 같으면 저작권 소송에 휘말렸을 소지가 다분하다. 가장 큰 근거는 그때까지 서양회화에서 밤하늘을 이렇게나 강렬한 파랑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파랑에 노랑까지 이토록 강렬한 원색 대비를 이루는 경우 또한 없었기 때문에 우키요에 화풍을 모방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고흐뿐 아니다. 모네가 1899년부터 시작한 〈수련〉 연작에 등장하는 다리는 히로시게의 그림에 등장하는 일본식 다리와 비슷하고 마네와 로트렉, 보나르 등 19세기 후반에 활약한 인상파 화가들 대부분이 우키요에의 요소를 차용했다.
우타가와 히로시게의 〈오후에 내리는 소나기와 대교〉
우키요에는 일본의 풍속화다. 당연히 서민들에게 친숙한 풍경과 주변의 사물, 인물과 이야기가 소재다.
히로시게의 그림은 다양한 색감으로 화려할 뿐 아니라 원근법을 사용해 입체감을 살리고 있다. 이것은 히로시게뿐 아니라 동시대에 활약한 또 다른 걸출한 화가 가쓰시카 호쿠사이(1760-1849)의 그림에도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특히 그의 그림 〈가나가와 앞바다의 파도〉는 당시 유럽에서 유행한 우키요에 중에서도 가장 유명했다. 클로드 드뷔시가 이 그림에 영감을 얻〈바다-3개의 교향적 스케치〉를 작곡한 후에 악보 표지에 〈가나가와 앞바다의 파도〉를 실었고, 카미유 클로델은 청동상〈파도〉를 빚었다.
또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산〉이라는 시를 썼다. 세 예술가가 같은 그림을 봤지만 남은 인상이 각각 바다, 파도, 산으로 달랐다는 점이 재미있다.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가나가와 앞바다의 파도〉가 음악가 클로드 드뷔시에게는 바다가 되고, 조각가 카미유 클로델에게는 파도가 되고,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에게는 산이 되었던 것처럼 이미지는 언제나 다른 형태로 번역된다.


에도 시대 초기의 우키요에에 없는 원근법을 사용한 덕에 파도가 입체감 있게 살아나 더욱 위력적으로 느껴진다. 이처럼 원근법을 응용한 일본의 우키요에를 ‘우키에’라고 따로 분류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우키에는 서양화, 구체적으로는 네덜란드의 그림을 차용함으로써 완성될 수 있었다. 정리하면 고흐가 차용한 것은 자기네 나라의 서양화를 차용한 우키에였던 것이다.
그리고 아무도 우키에를, 고흐의 그림을 표절이라고 하지 않는 것은 둘 다 ‘A+B=AB’가 아니라 ‘A+B=C’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어떤 위대한 예술도 다른 예술의 영향을 받지 않고는 탄생할 수 없다. 누군가는 품었다 그대로 뱉어내고, 누군가는 자신의 세계관과 기법을 계발하는 자양분으로 삼는다.
표절했다와 영향받았다는 백지 한 장 차이 같아도 정신이나 마음에 있어서만큼은 천지차이다. 어설프게 흉내 내는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완벽한 내 것으로 승화하기는 예술가에게 피할 수 없는 과제다.
왼쪽부터 마네, 모네, 고흐 작품 그림속에 일본풍이 나타나 있다.
아를의 카페 테라스에 앉아 있으면, 우리는 한 장의 그림이 아니라 한 시대의 교차를 보고 있는 셈이다. 일본에서 건너온 평면, 네덜란드의 기억, 프랑스의 밤, 그리고 한 화가의 내면이 겹쳐진 자리. 밤은 그렇게, 늘 다른 곳에서 시작되어 여기까지 흘러왔다.
박상봉 사회부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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