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칼럼] 유배와 사유의 역설 -청암 배성근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등록 2026-04-18 11:40

— 정약용, 강진에서 다시 세상을 설계한다.


다산 정약용 



역사는 종종 중심이 아니라 변방에서 새롭게 쓰인다.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난 이들이 오히려 시대의 본질을 더 정확히 통찰하는 경우가 많다. 조선 후기의 사상가 정약용이 강진에서 보낸 유배의 시간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그의 유배는 개인의 불운으로 시작되었다.


신유박해는 조선 사회의 사상적 폐쇄성과 정치적 긴장을 드러낸 사건이었고, 그 소용돌이 속에서 정약용은 남도 끝으로 밀려났다. 그러나 이 강제된 이동은 결과적으로 한 사상가를 완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강진에서의 삶은 단순한 유배 생활이 아니었다. 초기 거처였던 사의재에서 그는 사유의 기초를 다졌고, 이후 다산초당에서는 본격적인 학문적 열매를 맺었다. 이 시기 그가 남긴 저술들은 행정, 법률, 경제, 철학을 아우르며 조선 사회 전반을 재구성하려는 시도였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유배’라는 조건이다. 유배는 사회적 단절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기존 질서로부터의 해방을 뜻하기도 한다. 정약용은 중앙 정치의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었다. “국가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법은 누구를 보호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바로 이 거리감에서 비롯되었다.


또한 그는 지역 사회와의 접촉을 통해 현실 인식을 더욱 구체화했다. 강진의 백성들과의 교류, 그리고 백련사에서의 사상적 교류는 그의 학문을 추상적 이론이 아닌 실천적 지혜로 이끌었다. 이 점에서 그의 사상은 단순한 학문적 성취를 넘어, ‘현장성’을 획득한 사유라 할 수 있다.


결국 강진은 유배지가 아니라 ‘사상의 실험실’이었다. 그곳에서 정약용은 이상과 현실을 조율하며, 조선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했다. 그의 저술이 오늘날까지도 읽히는 이유는, 그것이 특정 시대를 넘어서 인간 사회의 보편적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실패를 단절로 이해한다. 그러나 정약용의 사례는 실패가 반드시 끝을 의미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오히려 그것은 기존의 틀을 벗어나 새로운 사유로 나아가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강진의 시간은 말해준다. 환경이 인간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환경을 어떻게 사유하느냐가 삶의 방향을 결정한다는 사실이다. 유배는 그를 가두었지만, 그의 사유는 오히려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갔다.




다산초당 가는 길 


청암 배성근 



정약용은 유배되지 않았다

다만, 세상으로부터 분리되어

자기 안으로 유입되었을 뿐

다산초당으로 오르는 길은

공간의 이동이 아니라

존재의 층위를 바꾸는 일

돌 하나 밟을 때마다

나를 통과하고

나를 통과할 때마다

이름은 점점 가벼워진다

삶은 바깥을 향해 자라지만

사유는 안쪽으로 침잠한다

그는 갇혀 있었으나

그의 생각은

경계라는 개념을 잃었으리라

대숲이 흔들리는 것은

바람 때문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질문들이

서로를 스쳐 지나가기 때문

눈을 감고 잠시 묻는다

길은 왜 위로만 이어지는가

그때 선하고 단호한 목소리

대답 없는 침묵이라고 말한다

“낮은 곳에서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비워진 자리만이 위가 된다.”

초당에 이르렀을 때

아무것도 얻지 못한 내가

가장 많은 것을 내려놓고 있었음을

존재를 향한 느린 상승을 그제야 알았다

이 길의 끝은 도착이 아니라

나 자신의 경계를 지우는 일이라는 것을



시와늪 대표 배성근(시인, 수필, 소설, 평론(비평).칼럼리스트)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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