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 없는 성폭력'·'장애인 이동권' 재판소원 사전심사 통과

최용대 발행인/ 주필 기자

등록 2026-06-09 21:53

무죄확정 판결 전원재판부 첫 회부…피해자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


'장애인 버스 탑승설비 미설치' 심리불속행 기각 사건도…누적 8건


'동의없는 성폭력' 재판소원 진행 기자회견'동의없는 성폭력' 재판소원 진행 기자회견 (서울=연합뉴스) 이지은 기자 = 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폭행ㆍ협박 최협의설을 이유로 무죄 판단된 '동의없는 성폭력' 재판소원 진행 기자회견이 열린 가운데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2026.4.23 jieunlee@yna.co.kr


(서울=연합뉴스) 이미령 기자 = '동의 없는 성폭력' 피해자가 피고인의 무죄 판결 취소를 구하는 사건과 장애인 이동권 소송에서 버스 휠체어 탑승 설비 제공 의무를 일부 노선에 한정한 판결의 취소를 구하는 사건이 각각 재판소원 사전심사를 통과했다.


헌법재판소는 9일 헌법재판관 3명으로 구성된 지정재판부 평의를 열고 성범죄 피해자 A씨와 지체장애인 B씨가 각각 청구한 재판취소 사건을 전원재판부에 회부했다.


A씨는 성범죄 피해자로, 가해자인 피고인은 2022년 7월 75차례에 걸친 A씨의 거절 의사 표시에도 A씨를 유사강간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수원지법은 A씨 진술과 녹음파일을 살펴볼 때 피고인의 행위가 '피해자의 항거를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협박'이었는지 입증되지 않았다며 작년 6월 1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검사가 항소했으나 수원고법도 지난 3월 같은 판단을 유지했다.


이후 검사의 상고 포기로 재판이 확정되자 A씨는 "법원의 재판으로 성적 자기결정권과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등이 침해당했다"며 재판소원을 청구했다.


A씨 측은 "성범죄 인정에서 가장 중요한 판단기준은 성행위에 대한 피해자의 동의 또는 의사가 있었는지 여부"라며 "그럼에도 법원이 유사강간죄의 인정을 위한 폭행·협박의 정도에 관해 종래 대법원의 태도에 따라 무죄 판결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법원이 유사강간죄 성립을 위해서 피해자의 항거를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협박이 있어야 한다는 '최협의설'을 따른 것이 부당하다는 취지다.


헌재는 "한편에는 무죄 확정 판결을 받은 피고인의 법적 안정성이라는 법적 이익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피해자에 대한 효과적 사법보호 청구권이나 국가의 형사사법 작용에 대한 헌법적 통제 요청이 있다"고 이번 사건의 쟁점을 짚었다.


헌법상 '피해자의 기본권'과 '피고인의 일사부재리 원칙, 무죄추정 원칙'과 관련한 기본권 내용과 보호 범위에 더해 '피해자가 제기한 무죄확정 판결에 대한 재판소원의 허용 범위' 등에 대해서도 전원재판부에서 검토가 이뤄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저상버스저상버스 [연합뉴스 자료사진] 2020년 4월 20일 광주 서구 광주시청 인근에서 장애인 활동가가 저상버스에서 하차하고 있다.


B씨는 휠체어를 이용해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지체장애인으로,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라며 2014년 3월 버스회사 2곳과 국가 등을 상대로 소송을 낸 이들 중 한명이다.


1·2심(서울중앙지법·서울고법)은 탑승설비 미설치가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차별행위'라며 두 버스회사가 즉시 모든 노선에 휠체어 탑승 설비를 설치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2022년 대법원은 두 업체의 영업 상황이 나쁜 점 등을 감안해 '원고들이 향후 탑승할 구체적·현실적 개연성이 있는 노선'으로 의무 이행 범위를 한정했다.


차별행위가 인정된다면 법원은 시정을 위해 적극적 조치 판결을 전향적으로 고려해야 하지만, 그런 판결을 내릴 때는 원고와 피고를 포함한 모든 이해관계인의 공익·사익을 종합해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파기환송심(서울고법)은 작년 11월 원고들이 출퇴근, 가족 방문 등에 이용하는 노선의 시외버스 몇 개에 대해 휠체어 탑승 설비를 설치하라고 판결했다. B씨의 경우 직장 주소지인 서울에서 부모의 주소지인 부산으로 이동하는 2개 노선, 언니의 주소지인 경기 고양으로 이동하는 5개 노선이 포함됐다.


B씨가 판결에 불복했으나 대법원은 지난 4월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상고를 기각했다.


이에 B씨는 법원의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이 "청구인의 이동권, 평등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하며 재판소원을 냈다.


B씨 측은 "법원에 따르면 향후 거주지를 이전하거나 직장을 바꿀 때마다 새로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며 "거주·이전의 자유, 직업의 자유를 행사할 때마다 다시 위법한 차별상태를 감수하고 새로운 권리구제 절차를 밟게 하는 부조리는 실효적 권리구제를 보장하는 재판청구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헌재는 "B씨의 상고를 심리불속행 기각한 것이 기본권을 침해하는지 여부에 대해 전원재판부에서 검토가 이뤄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심리불속행은 형사 사건을 제외한 소송에서 2심 판결에 중대한 법령 위반이 없으면 심리를 속행하지 않고 상고를 기각하는 제도다.


앞서 재판소원 시행 후 처음으로 사전심사를 통과한 녹십자의 '백신 입찰담합' 사건도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재판청구권이 침해됐는지가 쟁점이다.


이날 2건이 사전심사를 추가 통과하면서 지난 3월 12일 재판소원 시행 이후 누적 8건이 전원재판부에 회부됐다. 전날까지 접수된 877건의 재판소원 가운데 736건은 각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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